No. 168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세종서적 펴냄
이 책은 3년 전에 반쯤 읽다가 잃어버렸었다. 다시 찾은 거는 아니고, 서점에 가서 이것저것 구경을 하는데 우연찮게 이 책이 보여서 다시 읽어보자는 생각에 또 샀다. 책을 읽는데 그 때의 기억은 온데간데 없고 다시 새 책을 읽는 듯 한 느낌...ㅋㅋ 어렴풋이 기억 나는 것은 모리 교수가 죽어가는 병에 걸렸는데 그 제자가 매주 화요일에 찾아온다는 것 뿐, 자세한 내용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읽으면서 너무 새로운 느낌이 들었으니...ㅎㅎ
사실 책의 줄기는 앞에서 언급한 바가 거의 전부이다. 미치 앨봄의 대학시절 지도교수 모리 슈워츠*는 어느날 루게릭 병을 판정받고 죽음을 선고받았다. 그는 1995년 3월, ABC TV의 유명한 토크 쇼 '나이트 라인'에 출연하게 되었는데, 미치가 우연히도 이 방송을 보게 된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잊고 지냈던 모리 교수님에 대한 특별한 사연이 방송을 통해 퍼져나갔을 때, 미치는 알 수 없는 이끌임에 천 마일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모리 교수님을 찾아가게 된. 그리고 매주 화요일, 미치는 모리를 찾아가 인생에 대한 많은 조언을 듣는다. 그래서 이 책은 바로 이렇게 시작한다.
커리큘럼
내 노은사의 마지막 수업은 1주일에 한 차례씩 선생님 댁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서재 창가에서 땅에 떨어진 분홍빛 히비스커스 꽃잎을 내다보곤 했다. 수업은 화요일마다 아침 식사 후에 시작되었다. 주제는 '인생의 의미'. 선생님은 인생에서 얻은 경험들을 강의해 나갔다.
성적 평가는 없었지만 매주 구두 시험이 있었다. 나는 질문에 대답해야 했고 또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했다. 그리고 이따금 선생님의 머리를 베개 위에 편안히 괴드린다든지, 흘러내린 안경을 코 위로 다시 밀어드려야 했다. 수업이 끝난 후 선생님께 안녕히 계시라는 인사와 함께 작별의 키스를 해드리면 점수를 더 주셨다.
교과서 따윈 필요없었지만, 사랑, 일, 공동체 사회, 가족, 나이 든다는 것, 용서, 후회, 감정, 결혼, 죽음 등 여러 가지 주제들이 논의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강의는 아주 짧았다. 겨우 몇 마디 말로 끝나버렸으므로.
졸업식 대신 장례식이 치러졌다.
졸업 시험은 없었지만 배운 내용에 대해 긴 논문을 제출해야 했다. 그 논문이 바로 이 책이다.
모리 선생님이 일생 마지막으로 강의한 수업에 참여한 학생은 단 1명뿐이었다.
내가 바로 그 학생이었다. (p. 11-12)
이후에 책은 열 네번째 화요일까지 목차를 이어나가며 세상, 자기 연민, 후회, 죽음, 가족, 감정, 나이 드는 두려움, 돈, 사랑의 지속, 결혼, 문화, 용서에 대해 모리 교수와 미치의 대화를 담고 있다. 그 중 기억에 남는 부분을 꼽으면 아래와 같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문화는 우리 인간들이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게 하네. 우린 거짓된 진리를 가르치고 있다구. 그러니 제대로 된 문화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굳이 그것을 따르려고 애쓰지 말게. 그것보단 자신만의 문화를 창조하게. 그러나 대두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네. 그래서 그들은 나보다 훨씬 더 불행해. 이런 상황에 처한 나보다도 말이야." (p. 52)
"내 말은 스스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라는 뜻이야. 물론 사회의 규칙을 모두 다 무시하라는 뜻은 아니야. 예를 들면 나는 벌거벗은 채 돌아다니지도 않고, 신호등이 빨간 불일 때는 반드시 멈춘다네. 작은 것들을 순종할 수 있지. 하지만 어떻게 생각할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길 지 등 줄기가 큰 것들은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하네. 다른 사람이-혹은 사회가-우리 대신 그런 사항을 결정하게 내버려둘 순 없지." (p.192)
"달아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자기가 사는 곳에서 자기의 문화를 창조하려고 노력해야지. 보자구. 어디 살든지 우리 인간의 최고 단점은 근시안적이라는 점이야. 우리는 어떻게 될 수 있는지 보지 못해. 우리의 잠재력을 보고, 우리를 넓힐 수 있는 데까지 쭉쭉 넓혀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지. 한데 '이제 난 내 것을 갖고 싶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넘쳐나게 되면 결국 몇몇이 모든 것을 차지하게 되고, 그러면 가난한 자들이 들고 일어나네. 그럼 가진 자는 자신의 것을 훔쳐가지 못하게 군대를 써서 그것을 막게 되지." (p. 193)
우선, 문화에 대한 내용이다. 내 스스로 주제를 붙여보면 문화 속에서 내 삶을 사는 방법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모리 슈워츠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했다. 모리 교수는 현대 사회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스로의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데, 이건 바로 다른 사람이나 사회의 영향력이 매우 크기 때문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런 사회를 회피해 버려도 되는지에 대해서 그는 반대를 하고 있다.
간단한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어느 정도 수긍이 가면서도 100% 동의 되지 않는다. 우선, 스스로의 문화를 만들어 내라는, 자기 자신의 삶을 살라는 말은 매우 동의한다. 지금 이 사회를 보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든 사회의 구조에 맞춰서 살려고 아등바등 살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나는 아니라고 부인하지는 못하겠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며, 내 스스로의 만족을 추구하는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사람의 기준도 만족시키기 위해 가끔은 '나를 포기하는 일'까지도 한다. 무조건 대학을 가야만 하고, 그리고 무조건 대기업에 취직을 해야만 하고, 그리고 무조건 결혼도 잘 해야 한다.
물론 이렇게 해야만 '겨우'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진 지금의 사회 구조에 대한 문제도 매우 크다는 것을 절대적으로 인정한다. 하지만 이런 사회 속에서 우리 모두는 획일화된 '매뉴얼' 같은 삶을 살고만 있는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지. 가끔은 '이렇게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하는 '발직한 상상'을 하기도 하지만 이내 곧 생각을 접기도 한다. 사회의 문화 속에서 벗어나는 일을 하는 것이 조금 두렵기도 한 것 같고 용기도 부족한 것 같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우리가 동경하는 삶을 사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문화 속에서 획일화된 삶을 살도록 강요하는 사회에 반대한 사람들인 것 같다. 모리 교수의 말처럼 사회의 규칙을 무시한 사람들은 아니다. 그러나 일반적이라고 하는 삶 가운데 변칙적인 선택으로 무언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회사를 그만둔다거나, 장기간 여행을 떠난다거나,(너무 극단적인가;;ㅋ) 또는 이민을 간다거나...(ㅋㅋ) 물론,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없겠지, 이런 삶을 선택한 사람들에게도 부단한 노력이 분명히 뒤따르긴 했을 것이다.
앞에서 모리 교수의 말에 100% 동의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내 생각은, 힘든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면 가끔은 달아날 필요도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요즘 헬조선이란 말이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고 하는데, 이제 탈조선이란 말까지 나오면서 조선(한국)을 탈출해야 한다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나는 이런 말에 동의하는 입장이다. 기성세대들은 젊은이들에게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말하거나, 많이 힘든거 알지만 그래도 버텨라고 쉽게 말 하는데, 사실 말뿐인 것 같다. 당장 변화하는 것이 힘들다면 변화의 신호라도 보여야 젊은이들이 버틸 수 있는 힘이라도 있을텐데, 지금 한국 사회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대부분의 기성세대들이 젊은이들을 착취하는 구조 속에 살고 있는 것 같으므로... 탈조선을 꿈꾼다면, 기성세대의 일부가 그랬던 것 처럼 '아메리칸 드림'이라도 꿈꾸면서 젊은이들도 탈조선을 할 자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이기적인 것들에 휩싸여 살고 있어. 경력이라든가 가족, 주책 융자금을 넣을 돈은 충분한가. 새 차를 살 수 있는가, 고장난 난방 장치를 수리할 돈은 있는가 등등. 우린 그냥 생활을 지속시키기 위해 수만 가지 사소한 일들에 휩싸여 살아. 그래서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우리의 삶을 관조하며, '이게 다인가? 이게 내가 원하는 것인가? 뭔가 빠진 건 없나?' 하고 돌아보는 습관을 갖지 못하지. (p. 86-7)
지금의 젊은이들은 모두 다 이렇게 사는데,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삶을 돌아볼 여유조차 없는 것 같다. 한 발 물러서면 남들보다 정말로 한 발 물러서는 것 같은 느낌에 그럴 용기조차 없는 것 같다. 나 조차도 지금 이렇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을이 좋기도 하면서 한 편으로는 불안하기도 하다. 부족한 영어공부도 해야 하고 회사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 다른 공부들도 해야만 할 것 같은 생각들이 머릿 속 한편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는 약간 비관적으로 쓰기도 했지만, 모리 교수의 말에 동의하는 입장에서 다시 글을 쓰자면, 이렇게라도 한 발 물러서 있는 것이 정말 나의 삶을 되돌아 보게 해 주는 것 같아서 좋기도 하다. 인생을 높은 영어 실력, 회사에서의 성공으로만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어렵다...)
"사람은 성장하면서 점점 많은 것을 배우지. 22살에 머물러 있다면, 언제나 22살만큼 무지할 거야. 나이 드는 것은 단순히 쇠락만은 아니네. 그것은 성장이야. 그것은 곧 죽게 되리라는 부정적인 사실 그 이상이야. 그것은 죽게 될 거라는 것을 '이해'하고, 그 때문에 더 좋은 삶을 살게 되는 긍정적인 면도 지니고 있다구."
"네... 하지만 나이 먹는 게 그렇게 귀중한 일이라면 왜 모두들 '아,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갔으면...'하고 말할까요? 누구도 '빨리 65살이 되면 좋겠다'라고는 하지 않잖아요."
"그게 어떤 것을 반영하는지 아나? 인생이 불만족스럽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지. 성취감 없는 인생, 의미를 찾지 못한 인생 말야. 삶에서 의미를 찾았다면 더 이상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아. 앞으로 나가고 싶어하지.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어하지. 아마 65살이 되고 싶어 견딜 수 없을걸."
"... 젊은 사람 모두 알아야 한다구. 늘 나이 먹는 것에 맞서 싸우면, 언제나 불행해. 어쨌거나 결국 나이는 먹고 마는 것이니까." (p. 149)
나이 드는 두려움에 대한 챕터이다. 나는 지금 서른. 참 애매한 나이인 것 같다. 20대의 젊음으로만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삼십이립(三十而立)이라고, 서른이면 설 수 있는 나이인데 참 아직은 서있기에 뭔가 힘든 것 같은, 그래서 다시 앉거나 눕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모리 교수의 말처럼, 나이 드는 것에 맞서 싸우지 않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인생에서 나만의 의미를 찾아 살아간다면 나이 먹는 것에 재미를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20대로 돌아가고 싶으면서도, 그 때를 다시 추억해 본다면 그때는 또 그때 나름대로의 고민에 심각해서 괴로웠던 적도 있는데, 지금의 나는 적어도 '그딴' 문제로 고민을 하지는 않으므로... 지금은 '이딴'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지...ㅎㅎ
"이 나라에선, 우리가 원하는 것과 우리에게 필요한 것 사이에 큰 혼란이 일어나고 있네. 음식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지만, 초콜릿 아이스크림은 우리가 원하는 기호식품일 뿐이야. 자신에게 정직해야 하네. 최신형 스포츠카는 필요치 않아. 굉장히 큰 집도 필요 없고. 사실 그런 것만으로는 만족을 얻을 수 없네. 자에게에 진정으로 만족을 주는 게 뭔지 아나?"
"뭐죠?"
"자네가 줄 수 있는 것을 타인에게 주는 것. 돈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구, 미치. 시간을 내주고 관심을 보여주고, 이야기를 해주고... 그것이 생각만큼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네. ... 존경은 그렇게 자기가 가진 것을 내줌으로써 받기 시작하는 거야." (p. 157)
돈에 대한 챕터이다. 좀 더 나아가면, 인생의 의미를 스스로에게서 찾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앞에서 언급한 모든 것들은 돈을 나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것들로 인해 어느정도의 만족감은 얻을 수는 있을 것이다. 소유에 대한 욕구와 이를 충족했을 때 따르는 만족감이 있으므로. 하지만 이런 것들로 미치는 진정한 만족을 얻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런 것 같다. 명품을 갖고 싶은 사람이 그것을 소유했을 때, 남들과 비교를 하면서 또 다른 명품을 갖고 싶어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처럼. '자네가 줄 수 있는 것을 타인에게 주는 것' 쉬운 말로 봉사인데, 봉사를 통해 진정으로 만족을 줄 수 있다는 모리 교수의 말, 개인적인 경험을 비추어 본다면 매우 수긍이 간다.
중고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채워야 하는 봉사활동 때문에 억지로 했던 일들이 아니라, 작년에 처음으로 내 많은 돈과 긴 시간을 들여 캄보디아로 의료봉사를 간 적이 있었는데, 이 때 느꼈던 그 벅찬 감동은 아직도 너무 생생한 것 같다. 사실 지금 회사를 들어오게 된 것도 그때의 꿈을 이루기 위한 노력 때문인 것도 있다. 내가 하는 작은 일을 통해 그곳의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작은 도움이 되는 것들, 비싼 물건을 사면서 느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즐거움이었다.
이외에도 좋은 말들이 많이 있는데, 책 전체적으로 죽음을 앞둔 모리 교수의 인생의 조언을 듣게 되어서 좋았다. 책의 뒤로 갈수록 몸이 약해지는 모리 교수가 글을 통해 생생히 드러나기도 했지만, 그럴 수록 모리 교수가 우리에게 전달하는 말은 더 강력해 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만약 내가 모리 교수처럼 죽음을 선고 받는다면 어떨까... 나도 누군가에게 이렇게 내 생각과 삶의 가치관을 전달하고 죽음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 모리 슈워츠는 루게릭 병에 걸리기 전까지 브랜다이스 대학에서 평생 학생들을 가르친 노교수이다. 공황기 착취 공장을 본 후 다른 사람을 착취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기로 맹세하고 가르침의 길을 택한다. 그후 시카고 대학에서 사회학 석사, 박사 학위를 받고, 1959년부터 브랜다이스 대학에서 사회학 강의를 시작해 1994년 병으로 더 이상 강의할 수 없을 때까지 가르쳤다. (책날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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