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야기/독후감 IV

완벽한 공동체를 추억하며

inhovation 2015. 8. 15. 00:56

No. 167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크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민음사 펴냄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2013년이었다. 그리고 2015년, 최근에 다시 이 책을 읽었다. 그 때 책을 사게 된 계기가 조금 특이했는데, 무슨 일인지 지금은 잘 기억이 안나지만 회사에서 그 날 꽤 많이 깨졌었다. 기분이 나락으로 떨어지고도 최악으로 치닫아서 양재 근처에 있는 회사부터 강남역을 지나 신논현역까지 걸어갔었다. 그리고 무작정 들어간 교보문고. 걸어오면서 기분은 좀 달랬고 이런 저런 책을 보면서 좀 더 기운을 내려고 하고 있었다. 신간이 출시됐는지 하얀 책이 쌓아져 있었고 한 번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뭔가 익숙한 저자의 이름, 무라카미 하루키. 그리고 첫 장부터 생각 없이 읽기 시작했다. 얼마 읽지 않아서 가슴을 울린 한 마디.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잘 지는 것도 일종의 운동 실력이라는 거야." (p.17)


  아... 바로 이 책을 사서 단숨에 읽어버렸다. 사실 저 말이 이 책에 중심 주제나 그런 것은 전혀 아니다. 그냥 책 안에 있는 작은 에피소드 중에서 주인공의 친구가 내뱉은 말일 뿐이다. 그러나 무라카이 마루키의 '색채가 없는-' 은 나와 바로 저 말을 시작으로 만났다.



  주인공 다자키 쓰쿠루는 고등학교 때 4명이 친구와 함께 '완벽한 공동체'를 경험했었다. 흥미로운 것은 다른 친구들의 이름에 모두 색깔을 뜻하는 아카(빨간색), 아오(파란색), 시로(하얀색), 구로(검정색)가 있었는데 쓰쿠루만 색깔을 뜻하는 게 없어서 그냥 쓰쿠루로 불리고 다른 친구들은 위와 같이 아카, 아오, 시로, 구로로 불렸다. 이로 인해 쓰쿠루 스스로의 뭔가 좀 그런 것은 있었지만, 고등학교 시절 이 다섯 친구들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완벽했다. 남녀 성비가 3:2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커플이 되거나 하지도 않았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가게 되며 쓰쿠루 혼자 도쿄로 떨어져 나오고, 얼마 후 고향에 갔을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던 누명으로 친구들에게 따를 당하게 된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쓰쿠루는 새로운 여친의 제의에 친구들을 만나서 직접 그 누명을 벗겨보기로 한다.


  이게 책의 전체적이면서 간단한 줄거리이고, 친구들과 만나서 알게 되는 것들이 이 소설의 내용이다. 소설을 읽으면서는 일단 '재미있게' 읽었다는 느낌이 가장 컸다.


"무슨 일이건 반드시 틀이란 게 있어요. 사고 역시 마찬가지죠. 틀이란 걸 일일이 두려워해서도 안 되지만, 틀을 깨부수는 것을 두려워해서도 안 돼요. 사람이 자유롭기 위해서는 그게 무엇보다 중요해요. 틀에 대한 경의와 증오. ..." (p. 85)


"우리 모두는 온갖 것들을 끌어안은 채 살아가." ... "하나의 일은 다른 여러 가지 일들과 연결되어 있어. 하나를 정리하려 하면 어쩔 수 없이 다른 것들이 따라와. 그렇게 간단하게는 해방될 수 없을지도 몰라. 너든, 나든." (p. 340)


  이 책에서 쓰쿠루는 완벽한 공동체에서 자신이 왜 혼자 떨어져 나와야 했는지에 대해 오랫 동안 뭍어둔 채 살았다. 그러나 그 틀을 벗어나는 용기를 통해 다시 친구들과 만나게 되고 오랫동안 숨겨졌던 비밀을 완벽히 풀게 된다. 하지만 비밀은 풀렸어도 오랜 세월 자신을 그렇게 만들었던 사건에 대해 완벽하게 해방되지는 못한다. 이미 마음에는 생채기가 남아 있는 것이고, 회복이 되었다고 해도 그 흔적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건 쓰쿠르의 친구들에게도 마찬가지. 책의 전부인 이런 내용들이 너무 재미있었고 때론 반전을 보이면서 흥미 진진함을 선사했는데, 소설을 읽는 묘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또 다른 점으로는 쓰쿠루가 경험했던 완벽한 공동체는 나에게 어떤 것이 있었을까 하고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첫 직장생활이 생각났는데, (함께 일했던 분들의 생각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그 때 정말 일 하는 게 행복했기도 했다. 꿈을 이루지 못하고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던 '회사'라는 곳에 인턴으로 들어가게 되었지만, 일의 강도도 그렇게 세지 않았고(인턴이라 그랬겠지만), 같은 팀 분들과 모두 사이 좋게 지내면서(인턴이라 혼도 별로 안냈겠지만) 모든 것이 좋았다. 1년 정도의 인턴 생활을 마치고 여행을 가기 위해 회사를 나오게 되었는데, 나오고 나서도 이 때가 그리웠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 향수(?) 때문이었는지 다시 같은 회사 다른 팀으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인턴이 아니라 그랬는지) 일도 힘들고 혼도 많이 났다. 그래도 항상 완벽한 공동체였던 인턴을 했던 팀 분들과는 종종 만나며 그 시절을 추억했다. 이 때의 (말도 안되는?) 경험 때문인지, 아직도 나는 (다른) 회사에서 '완벽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며 지내고 있다. 물론 쉽지는 않다.


"그렇게 멋진 시대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게. 온갖 아름다운 가능성이 시간의 흐름 속에 잠겨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 (p.385-6)


  그러고 보면 나에게 과거를 추억한다는 것은 완벽했던 공동체를 추억하는 것 같다. 그땐 그런 사람들과 함께 해서 행복했었는데 하는 것. 가끔 이런 생각에 젖어들다 보면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지금도 역시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라는 사실에 가슴이 저릴 정도로 아련해 지기도 한다.



  이번에 책을 읽고 나서는 지난 번에 하지 않은 것을 해 봤는데, 바로 책에서 계속해서 나오는 노래, '르 말 뒤 페이'를 들어봤다는 것이다. 음악에 조예가 깊지 않아 평가나 이런 것은 잘 모르겠지만, 차분하면서도 고요하다가도 중간엔 휘몰아치기도, 어떤 부분은 약간 으스스한 분위기까지 느껴지는 노래였다. 잘은 모르겠지만 책 전체에서 느끼고 있는 쓰쿠루의 기분을 잘 표현하고 있는 것도 같다.



  무엇보다 힐링을 많이 하게 된 책, 그리고 재미있는 책이었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13-07-01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지금, 당신은 어느 역에 서 있습니까?모든 것이 완벽했던 스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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