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야기/독후감 IV

정신과 환자는 어떻게 보면 사실 다 정상이다

inhovation 2015. 8. 22. 19:57

No. 169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문학동네 펴냄



  고3때 지식인에 정신과 의사는 정신이 모두 정상인지 물었던 적이 있다.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는 기억이 잘 안나지만, 답변자로 채택한 사람의 답장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의사들이 술, 담배가 몸에 좋지 않은 것을 알면서 술, 담배를 하는 것과 같이 정신과 의사도 이혼 등에 따라 자신에게 오는 정신적인 충격을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술, 담배의 경우는 능동적인 선택이지만 정신적 충격은 수동적인 선택이다. 하지만 의사들이 자신에게 오는 병을 지식을 총동원하여 통제하려고 노력하듯이 정신과 의사도 자신에게 오는 정신적인 충격들을 철저히 분석하여 관리하고 통제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하지 못하는 의사들도 더러 있긴 하다고...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의 주요 무대는 정신병원이다. 베로니카가 죽기로 결심하고 수면제를 다량으로 섭취한 후 혼수상태에 빠졌는데, 깨어난 곳이 바로 정신병원이었고, 이곳에서 죽음을 앞두고 보내며 만나는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사실 죽음을 앞두게 되어 살아가는 이야기는 이고르 박사의 가짜 시한부 인생 선고 때문이었다. 이고르 박사는 자살을 시도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개인적인 연구를 위해 베로니카에게 심장발작을 일으키는 약을 투여하며 베로니카의 행동을 관찰한다. 베로니카는 자신에게 자살일 시도했다 깨어났지만 자신에게 다시 선고된 죽음 앞에서 몹시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몇 명의 정신병원 환자들과 관계를 맺는데, 바로 제드카(우을증), 에뒤아르(정신분열), 마리아(공황장애).


  제드카는 처음으로 베로니카에게 말을 걸고 미쳤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했고, 에뒤아르는 베로니카와 사랑에 빠져 책의 마지막에는 정신병원을 탈출했다. 그리고 마리아, 공황장애로 변호사를 그만두게 되고 정신병원에 입원한 그녀는 책의 마지막에 이고르 박사와 정신병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을 한다. 나는 이 마지막 부분, 마리아와 이고르 박사의 대화가 가장 인상깊었다.


"... 난 소위 '정상적'이라는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나보다 앞서 많은 의사들이 그 연구를 했고, 정상적인 상태라는 것은 사회적 합의의 문제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죠. 달리 말하자면, 대다수 사람들이 어떤 것을 올바르게 생각한다면 그게 올바르게 되는 거죠. 어떤 것들은 가장 초보적인 상식에 의해 좌우됩니다. 단추를 셔츠 앞쪽에 단다는 것은 논리의 문제겠죠. 단추들을 옆에 달아놓는다면 채우기가 아주 어려울테고, 등뒤에 달아놓는다면 아예 불가능할 테니까요. 하지만 다른 것들은 많은 수의 사람들이 그것들은 그래야만 한다고 여기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치부되는 겁니다. ..." (p. 237-8)


"... 개개의 인간은 모두 유일해요. 자기 자신만의 자질, 본능, 쾌락의 형태, 모험을 추구하는 방식을 가지고 있죠. 하지만 사회는 집단적인 행동 양식을 강요해요.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왜 그런 식으로 행동해야 하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게 되죠. 그들은 그걸 받아들여요. ..." (p. 240)


"... 부인은 그 누구와도 닮지 않은 '다른' 사람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닮기를 원하죠. 그건 내 관점에서 볼 때 심각한 병이라 할 수 있습니다. ... 모든 사람과 닮기를 강요하는 게 심각한 거죠. 그건 신경증, 정신장애, 편집증을 유발시켜요. 자연을 왜곡하고 하느님 법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심각한 겁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숲에 똑같은 잎은 단 하나도 창조하지 않으셨어요. 하지만 부인은 다르다는 걸 미친 걸로 생각하죠. ..." (p. 241)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정신과 의사들은 정신과 환자들을 '다른 사람들과 닮게' 해 주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책에 나오는 이고르 박사는 완전 반대, 오히려 일반 사람들과 다른 사람, 우리가 정신과 환자라고 하는 사람들을 정상적인 것으로 판정하고 있다. 오히려 모두 같은 모습으로 살기 원하는 사람들이 이상한 것이라는...


  다른 삶을 산다는 것이 쉬운 것 같기도 하면서 그 경계가 참 모호한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남들과 같은 삶을 살면서 그 안에서 '안정감'을 얻기도 한다. 다른 사람이 다 하는 것들을 나도 하고 있을 때,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것을 나도 갖고 있을 때, 우리는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남들과 다른 노선을 걷고 있을 때는 비교 대상이 없으므로 안정감보다는 '불안감'이 우리를 엄습해 오기 시작한다. 현실의 삶이 궁핍하거나 절대적으로 어려운 삶을 사는 것은 아닌데 단지 감정적으로 불안한 마음 때문에 때로는 다시 다른 사람과 같은 삶을 사는 자리로 돌아오기도 한다.


  물론, 나쁘고 좋고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지금은 다른 사람과 같은 삶을 사는 것이 나쁘다, 안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과 같은 삶을 살아아먄 한다는 '생각', '강박'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이고르 박사에 따르면 이런 생각은 오히려 비정상적인 것이라고 한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획일화된 교육, 주입식 교육 방식으로 인해 '정답만을 찾는 삶'을 살도록 교육받은 것 같다. 모두가 단 하나의 목표, 좋은 성적을 위해 교육받았다.


(그런데 외국도 똑같은 것 같기도 하다. 베로니카의 경우를 보면...)


어린 시절부터 베로니카는 자신의 진정한 소명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피아니스크가 되는 것이었다! 열두 살의 나이에 첫 레슨을 받았을 때부터 그녀는 그것을 느꼈다. 그녀의 재능을 간파한 선생은 그녀에게 음악가가 되어보라고 권했다. 하지만 어느 날 그녀가 한 콩쿠르에 입상하여 모든 것을 그만두고 피아노에만 전력하겠다고 밝히자, 엄마는 그녀를 다정하게 쳐다보며 이렇게 대답했다.

"피아노를 연주해서 먹고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단다, 얘야."

"하지만 엄마가 피아노 레슨을 받게 하셨잖아요!"

"그건 오로지 너의 예술적 재능을 계발시키기 위해서였어. 남자들은 아내가 피아노 치는 걸 좋아한단다. 파티 같은 데서 각광을 받을 수도 있고. 피아니스트 생각은 잊어버리거라. 열심히 공부해서 변호사가 될 생각이나 해. 장래성 있는 직업은 바로 그런거야."

엄마는 현실이 어떤 것인지 이해할 만큼 풍부한 경험을 가졌으리라고 확신한 베로니카는 엄마의 말에 따랐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들어가 훌륭한 성적으로 학위를 땄다. 하지만 그녀가 얻은 직업은 고작 도서관 사서직이었다.

"나는 좀더 미친 짓을 했어야만 했어."

하지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그녀에게도 깨달음은 너무 늦게 찾아왔다. (p. 135-6)


  이런 걸 보면, 큰 사람이 되기 위해 외고에 가고, 외고에서 성공해서 서울대에 가고, 졸업을 하고 대기업에 가는데, 결국 회사원인 삶... 연봉이 많든 적든 회사원. 연봉이 많으면 또 그만큼 힘든 회사원. 근데 연봉이 적다고 쉬운 회사원은 아닌... 참 암울하다...



  이렇게 현실적인 삶에서도 우리는 남들과 같은 삶을 살기 원하는데, 정신적인 면을 봐서도 우리는 항상 남들과 같은 감정을 느끼길 원하는 것 같다. 우울해서만은 안되겠지만, 항상 남들처럼, 또는 남들보다 더 행복하기만을 원하는 삶을 추구하는... 마리아는 공황장애를 겪고 있는데, 이고르 박사는 이런 그녀에게 정상이라고 말하고 있다. 오히려 자연의 순리를 역행하는 것이 비정상이라고...


  감정에 대한 이런 글을 읽으니 얼마 전에 읽은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서 모리 교수가 죽음의 감정을 받아들인 부분이 생각난다. 그는 죽음 앞에 찾아오는 감정에 온 몸을 던져 그 감정을 충분히 누리도록(?)해서 그 감정을 충분히 경험하고 벗어난다고 했다.


"어떤 감정이든 결코 그것에 초연할 수는 없어. ... 우리가 감정을 자제하면-즉 그 감정들이 자신을 온전히 꿰뚫고 지나가게 하지 못하면-겁내느라 정신이 없어지고 마네. 고통이 겁나고 슬픔이 겁나지. 또 사랑에 뒤따르는 약해지는 마음이 겁나네. 하지만 이런 감정들에 온전히 자신을 던지면, 그래서 스스로 그 안에 빠져들도록 내버려두면, 그래서 온몸이 쑥 빠져들어가 버리면, 그때는 온전하게 그 감정들을 경험할 수 있네. 고통이 뭔지 알게 되지. 사랑이 뭔지 알게 되네. 슬픔이 뭔지 알게 되네. 그럼 그때서야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좋아. 난 지금껏 그 감정을 충분히 경험했어. 이젠 그 감정을 너무도 잘 알아. 그럼 이젠 잠시 그 감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겠군'이라고 말이야."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p. 132)


  이걸 보니, 얼마 전에 본 영화 '인사이드 아웃'도 생각이 난다. 항상 즐거움만 추구하는 Joy보다는 슬픔을 통해 한 단계 성정하는 Sadness가 필요한 것 처럼, 때로는 우리에게 찾아오는 감정들을 충분히 느끼며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물론 슬픔의 감정들, 괴로움의 감정들을 느끼는 것들이 실제로는 정말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감추고 남들에게 보이는 행복한 모습만을 찾는 것이 오히려 스스로를 왜곡하게 되는 미친 일이 아닐까...



  다시 앞의 내 질문으로 돌아가면, 정신과 의사들이 정상이고 아니고를 판단하기 보다 정신과 환자들이 모두 정상인지 아닌지를 판단해야 할 것 같다. 지금까지 논했듯이 이고르 박사의 의견에 따르면, 정신과 환자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이므로 정상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음... 갑자기 생각났는데, 내 주변 사람들에게도 적응해 보면, 마음이 맞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을 '이상한'사람으로 치부해 버리기 보단, 그냥 '나랑 성격만 맞지 않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그 사람을 욕하며 내 감정을 낭비하기 보다는 그냥 저렇게 생각하고 흘려보내면 되지 않을까...ㅎㅎ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저자
파울로 코엘료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14-04-1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새옷을 입은[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2000년 국내에 소개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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