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파토스. Peripatos. 찾아보니 지리적으로는 아크로폴리스 주변에 있는 둘레길을 의미하고, 페리파토스의 뜻이 걷는다는 의미로 소요학파, 페리파토스학파라고도 불린다 한다. 소요逍遙의 뜻이 자유롭게 이리저리 슬슬 거닐며 돌아다닌다는 뜻이다. 노닐다 소逍, 거닐다 요遙. (글을 쓰면서 이제 알았는데) 말 그대로 난 진짜 이곳을 소요했다. 지도상으로는 조금 더 아크로폴리스 안쪽 같기도 하지만, 그길이 그길이리라, 아크로폴리스 주변일 넉넉-하게 산책했다. 아래 파란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아크로폴리스 둘레길, 페리파토스이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도 나와 같이 이 곳을 걸으며 사색에 잠기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런지, 페리파토스의 초입부터 가이드를 낀 투어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시간이 있어서 그냥 아크로폴리스 주변을 걷고자 한 것이었는데, 이런 역사적인 장소에 가게 될 줄이야.





나는 아크로폴리스를 왼쪽에 끼고 골목 여기저기를 돌아서 주변을 소요했다. 구석구석 눈요깃거리들이 많이 있다. 골목을 걸으며 간간히 보이는 아크로폴리스도 멀리 있지만 위압감을 드러냈다.

다 무너지고 기둥 등등만 남은 로만 아고라도, 창살 너머 보이는 것이긴 했지만 긴-세월의 역사를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덥긴 했지만, 좌우로 보이는 역사의 흔적들 사이를 걷다보니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것 같았다. 2천년 전에는 어땠을까, 2천년 후에는 어떨까, 이런 생각들.



8월의 아테네였지만, 더위에 강한 나에게는 괜찮은 날씨였다. 무너진 유적들 사이를 유유자적하게 걸으면서 사색에 잠기는 시간 자체가 너무 좋았다.











멋진 현대 건축물을 관람하는 것도 재미있고, 잘 보존된 고전 건축물을 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이렇게 다 무너져내린 과거의 흔적을 보는 것도 꽤 의미있었다. 오히려 멋지게 완성된 또는 옛 형태를 간직한 모습이 아니다보니, 무너져내린 것 자체로도 상상력을 더 끌어올리는 것 같다. 신혼여행으로 로마를 갔었는데, 로마에서는 그래도 이렇게 무너져내린 것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과거의 모습이 온전치는 못해도 콜로세움도 그렇고 아테네에서만큼 무너져 내린 건축물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알쓸신잡에서 누군가 이야기 한 것 처럼, 아테네는 늙어버린 미소년의 모습이 정말 딱 맞는 것 같다. 지금은 다 무너져내렸지만, 짧았지만 한 시대를 군림하던 그 역사의 흔적을, 무너져내린 건물들의 자리와 흔적들을 보면서 상상하는 것, 그 시간들이 나에게 참 좋았다. 138억 년의 우주의 역사, 46억 년의 지구의 역사 속에 고작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은 몇천 년 정도인데, ...

아크로폴리스를 돌아 내려오는 길, 사람도 많이 없고 여유롭게 걷고 둘러보며 사진도 찍고 사색에 잠긴 시간. 참 좋았다. 오히려 중간에 아크로폴리스 안쪽으로 들어가 바위언덕 위에서 내가 걸어온 길, 페리파토스를 내려다보는 시간도 멋있긴 했지만, 사람도 많고 정신없기도 해서 '와!' 정도였지, 혼자만의 생각을 한다거나 할 수는 없었다. 그냥 쓱- 지나갈 수도 있고, 그늘도 없는 길이라 가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아크로폴리스, 파르테논 신전을 올라간다면 페리파토스를 걸으며 고대 그리스를 조용하게 온전히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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