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야기/필수교양 통일

통일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inhovation 2018. 12. 12. 23:30

대학원 첫 학기, 하루는 교수님이 학생들을 향해 물었다. “자네들은 왜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공부를 하는 각자의 목적이 다양한 만큼 여러 대답이 나왔다. 북한에서 기업활동을 하기 원한다는 한 학생의 대답에 교수님은 자유로운 왕래가 가능하고 개성공단 같은 경제활동이 확실하게 보장되면 통일은 안 되도 괜찮은 것 아니냐며 되물었다. 이후 교수님은 다른 학생들의 의견에도 계속해서 반론을 제시하며 입막음 스킬을 보여주었다.


결국 내 차례. 머릿속이 하얘지는 기분이었다. 북한에 관심을 갖고 공부를 시작하게 된 가장 최초의 순진한(?) 계기인 ‘북한에 복음을 전하고 싶어서’라고 대답해야 하나, 뭐라고 해야 하나.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서 얼떨결에 이렇게 말했다. “굶어 죽는 북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통일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대답을 하고 나니 시원하긴 했지만 교수님의 반론을 듣고서는 가슴속 저 깊은 곳부터 다시 턱- 하니 막히는 기분이었다.


당시 북한은 광명성 3호를 발사했다. 교수님은 이 발사 비용이 모든 북한 주민들의 1년치 식량에 해당하고, 만약 북한이 발사 대신 이 비용으로 식량을 배급하면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되니 통일은 안 해도 괜찮은 것 아니냐고 하셨다. 결국 내가 대답한 통일의 필요성이 충족되니까 이건 통일의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고 하셨다. 석사과정생 나부랭이가 감히 북한전문가이신 교수님께 다시 반론을 제시하며 더 이상 따질 수도 없었고, 그럴 지식도 없었다. 이렇게 교수님은 모든 학생들의 대답을 올킬 하시고 그 날 수업에서 말하고 싶은 논리를 펼치셨다.


교수님은 통일의 당위성으로 ‘남한과 북한이 함께 21세기를 살아나가기 위한 방안으로서의 통일’을 제시하셨다. 경제학자답게 남한의 경제 성장 정체와 북한의 경제난 해소는 통일을 함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교수님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어떤 책에서는 통일 후 얻게 되는 실리를 아래와 같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통일이 되면 통일 직후부터 10년 동안 총소득의 1%를 세금으로 부담할 때, 매년 11%의 실질소득 증대를 얻는다. 그 기간이 경과했을 때 실질소득이 약 2.6배로 늘어난다면 통일이란 경제적 면만 보더라도 아주 큰 이득이다. 1인당 소득이 3만 달러에서 시작하는 것이라면, 통일 10년 후에는 시작연도 불변가격으로 7만 7,000달러가 된다. 통일을 계기로 엄청난 경제 성장과 번영, 그리고 평화와 함께 완전한 자주를 얻게 되어 세계에서 당당한 강소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통일은 대박이다, p. 21)


대학원을 다니는 동안 (나쁜 것도 아니고 싫은 것도 아니었지만) 경제적 관점에서의 통일에 대해 계속해서 배웠다. 마치 그게 진리이고 유일한 답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질문이 생겼다. ‘통일의 당위성이 경제적인 것 하나만 있을까? 기독교적 관점에서 통일의 당위성은 무엇일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과 대답이 머릿속을 오갔다. 정말 북한 백성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통일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그런데 북한에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고 복음화의 물결이 일어난다면? 이러면 굳이 통일은 안 해도 될 텐데….


거듭되는 고민 끝에 내린 대답의 관점은 조금 달랐다. ‘지금처럼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복음이 말하는 ‘화평’을 꿈꿀 수 있는가?’ 현재 남한과 북한은 경제만이 문제가 아니다. 기독교 역시 심각한 문제 가운데 직면해 있다. 경제가 정체된 것만큼이나 남한의 기독교는 침체되어 있고, 교회가 사회의 본이 된 적은 오래다. 북한의 기독교는, 경제만큼이나 정말 암울하다. 종교단체로 조선기독교도연맹이 있지만 모양뿐이고, 평양에 있는 교회도 건물 그 이상의 역할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 가운데 남과 북의 사람들은 진정한 평안을 누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통일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앞에서 논의한 것처럼 경제적인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남과 북의 교회에도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 정체되고 탄압받는 기독교를 변화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통일을 통해 자꾸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어진 통일 과제와 맞닿아 있는 복음의 본질에 대해서도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통일의 필요성. 어려운 문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에게 한 번 물어보면 어떨까. 통일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엡 2:14)


꼭지명: 기독 청년의 필수교양, 통일

제목: 통일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2016년 5월 @QT Zine(Young2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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