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야기/독후감 III

가짐, 누림, 나눔

inhovation 2016. 3. 4. 09:32

No. 164

깨끗한 부자 가난한 성자

양낙흥 지음

IVP 펴냄


  오늘은, 얼마 전에 읽었던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에 이이서 읽은 책 바로 ' 깨끗한 부자 가난한 성자'다. 찜찜했던 마음을 상당 부분 해결해 준 책. 특히 책의 마지막 장에는 '결론' 이라고 해서 청부론과 청빈론 사이에서 중도를 향하는 내용이 있어서 정말 결론, 논쟁 끝이란 생각이 든다. 우선, 책을 추천해준 동생에서 상당히 고맙고, 청부론과 청빈론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던 내가 조금이나마 이렇게 공부할 수 있게 되어서 매우 뿌듯하다.


  깨끗한 부자(김동호, 규장, 2001)를 시작으로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김영봉, IVP, 2003)가 그동안 청부론과 청빈론을 대표하는 책으로 쌍벽을(?) 이뤘던 것 같다. 기타 많은 책도 있지만... '깨끗한 부자'에서는 청부론을 강조하고 있다면 '바늘귀를 통과한 부자'에서는 청빈론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이 책, '깨끗한 부자 가난한 성자'에서는 둘 모두를 비판하며 나름 깔끔하게 정리를 하고 있다. 지난 번 독후감 마지막에 썼듯이 '바늘귀-'에서 내가 가졌던 불편한 마음, '금욕주의를 따라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이 어느정도 제시되어 있다고 보면 되겠다. 책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렇다.


"지금까지 우리는 성경이 물질과 돈에 대해 언급하는 본문들을 통해, 재물과 부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요컨대 재물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세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을 듯하다. 그것은 가짐(소유), 누림(향유), 나눔(공유)이다." (p. 227)


  사실 책을 다 읽고 나니 2년 전에 읽었던 법정스님의 '무소유'(http://inhovation.tistory.com/302)가 생각이 났다. 그리고 내가 쓴 독후감. 무소유와 소유의 즐거움에 대해 정리해 놓은 글인데, 어찌 보면 '깨끗한 부자 가난한 성자'의 결론이 이런거 아닐까 싶다. (나는 이미 2년 전에 생각을 모두 정리했었던 것일까...!?) 이러고보니 오늘 쓸 말이 별로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책은 총 5부로 구분되어있다.

  먼저 1부. 한국 교회의 불균형적 물질관에서는 청부론과 번영 신학, 청빈론과 금욕주의에 대해 다루며 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둘 다 올바른 듯 해도 너무 치우쳐 있어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을 다룬 것이다. 번영 신학에서는 비성경적 축복관, 적극적 사고 방식 류의 축복관을 꼬집고 있다. '믿는 대로 된다'는 것은 어쩌면 기독교가 아니라 심리적인 암시일 수 있다는 것이다. 금욕주의에서는 성경에서 분명히 누림의 즐거움을 언급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축소시키는 부분, 욕구를 죄의 근원으로 보고 근본적으로 욕구를 죄악시하는 것처럼 표현한 부분을 비판했다. 이는 내가 지난 번 책을 읽고 느꼈던 부분과 일맥상통해서 상당히 시원하기도 했다. 무거운 멍에를 벗어던진 것 마냥...

  2부. 성경은 부를 어떻게 보는가에서는 신구약을 넘나들며 성경에서 가난과 부에 대해 언급한 부분들을 다뤘다.

  3부. 자족, 누림 그리고 나눔에서는 자족하는 삶, 먹고 사는 것에 대해 염려하는 삶, 그리고 십일조의 문제를 다뤘는데, 십일조 부분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답을 주지 않고 십일조의 본래 의미와 유래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고 스스로 고민하고 선택하게끔 한 부분이 너무 좋았다.


"'십일조를 꼭 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을 하는 대부분의 동기는 십일조 이하의 헌금을 하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그것이 '왜 꼭 십의 일만 해야 하는가? 그 이상을 하면 안 되는가' 하는 의미의 질문을 아닐 것임에 분명하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은 그 이하의 헌금을 해도 되지 않는가 하는 의미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 납세 전 십일조냐 납세 후 십일조냐 하는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각자의 신앙과 능력에 따라 양심껏 정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잘 모르겠다면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묵상하면서 기도하면 적어도 자신은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지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이런 지엽적인 문제에 대해서까지 다른 사람이 가르쳐 주기를 기다리는 것은 적어도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적절치 않은 일로 보인다." (p. 139, 142)


  4부. 일터와 교회에서는 우리의 삶에 대한 부분을 다루었다. 일중독 사회를 통해 사유재산을 쌓고 이윤추구를 하는 자영업자의 삶은 하나님보다 이윤추구가 먼저 있으니 죄를 짓은 삶은가, 그리고 목회자의 물욕에 대해 다루었다. 사실 부, 다시 말해 재물,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해 돈이 우리 삶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다. 사실 우리가 일 하는 의미도 돈을 벌기 위해서에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런 삶, 즉 돈 버는 삶이 우리 삶에 최우선순위로 자리잡아 갈 때 우리는 점차 행복하지 않을 삶을 살게 될 위험이 매우 커지는 것 같다. 돈을 많이 벌자는 것도 어떻게 보면 그 자체에 일차적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있는 것인데 우리는 어느샌가부터 행복보다는 돈을 더 중요시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사람은 건강하고 부유하고 현명하다"라고 한 벤저민 프랭클린은 야근을 강요하는 우리의 사회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문제다. 야근을 하니 일찍 잘 수도 없고, 이러니 하나 둘 씩 얻는 병들로 인해 건강하지도 못한다. 뷰유할지는 몰라도 현명한 삶은 아닌 듯.


"한국의 많은 직장인들이 저녁 8, 9시까지 근무하는것은 예사다. 귀가하면 10시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한 사회 풍조는 특히 기독교 관점에서 볼 때 상당한 염려를 불러일으킨다. 아침 6시에 후다닥 일어나서 출근하고 밤 늦게 귀가하는 리듬 속에서, 우리 사회의 직장인들이 먹고사는 것 외에 무슨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겠는가? 그러한 생활 패턴에서 어떻게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겠는가? 자기 성찰이 없다면 인간의 영혼이 어떻게 되겠으며 가정의 영적인 상황은 어떻게 되겠는가?" (p. 150)


  최근에 회사에서 점심을 먹고 오랜만에 산책을 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한 분이 요즘 너무 바빠서 개인적인 시간을 갖지 못해 힘들다고 했다. 예전에는 개인적인 시간을 꼭 만들어서 혼자 생각하는 시간도 갖고, 공부하는 시간도 갖고 그랬는데, 요즘엔 전혀 그럴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일이 너무 많고 주말까지 개인 시간을 가질 수 없어 이렇게 사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고민이 된다고... 바쁘게 사는 것이 좋을 수 있어도 너무 끌려만 다니는 것이 싫다고 했다. 정말 그런 것 같다. 일 하는 시간이 우리 하루 일상 중 꽤 큰 시간을 차지하는데, 이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또 이로 인해 그 외의 시간, 혼자 시간을 갖는다든지, 가족과 시간을 갖는다든지 하는 시간이 침해 된다면 문제일 것이다. 행복하자고 하는 일인데 이게 우리의 행복을 앗아가고 있다니... 이런 면에서, 나는 어떤 일을 해야 하고,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또 다시 한 번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간호사로 3교대 근무를 하는 아내의 삶도. 물론 직업의 특성상 교대근무를 하지 않을 수 없지만 이런 직장 생활 가운데 그렇다면 어떤 생각과 마음가짐을 가져야 할지에 대해서도...


  5부. 가난과 부에서는 가난한 자들, 부유한 자들에 대해 다루었다. 금욕주의에서처럼 가난한 삶을 자청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은 원천적으로 '죄의 부산물'로 규정하고 가난을 이상적이거나 낭만적으로 묘사하지 않은 성경적 근거를 댔다. 그러나 가난이 항상 하나님의 저주와 형벌은 아니고 복음적 가난, 구조적 가난에 대해서도 다루었다. 특히 구조적 가난,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진짜 가난'이 많은 원인들에 대해 과거 식민 정책을 다루고 환경적 원인으로 인한 자연 재해는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부분인 것 같다. 어쩌면 금욕주의를 실천하며 '스스로 가난'하게 산다고 하는 사람들은 진짜 가난한 삶이 아닐 지도 모르겠다.


"2010년 세계은행의 통계에 의하면, 세계 은행 통계에 의하면, 세계의 절반에 달하는 30억의 사람들이 하루에 2달러 50센트 이하의 돈으로 살아가고 있다. 또 최소한 80%는 하루 10달러 이하의 돈으로 살아간다. 세계에서 하위 40%의 저소득층이 차지하는 수입은 전체의 5%에 불과한 반면 상위 20%가 세계 소득의 3/4를 차지한다. 유니세프에 따르면, 매일 2만 4천 명의 어린이들이 가난으로 인해 목숨을 잃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은 남아시아와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다. 2005년 현재, 개발도상국에 살고 있는 초등학교 연령의 어린이 7천만 명 이상이 학교를 다니지 못한다. 세계가 무기 구입에 사용하는 돈의 1%만 있어도 모든 어린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잇다. 거의 10억 명의 사람들이 21세기에 들어와서도 문맹이거나 자기 이름을 쓸 줄 모른다. 4천만명이 HIV/AIDS에 감염되어 있고 그중 300만 명이 2004년에 사망했다. 매년 3억 5천명 내지 5억 명의 사람들이 말라리아에 걸리고 그중 백만 명이 사망하는데 그중 90%가 아프리카에서 발생한다." (pp. 188-9)


  이러한 상황 속에 우리는 어쩌면 가난한 삶을 살자고 외치면 안될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삶이 어떤 모습이든, 부자든 그렇지 않든(진짜 가난은 아닌), 우리에게 허락된 부를 가난한 자들을 위해 기꺼이 내어 줄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하겠다. 부자의 의무는 이런 것 아닐까.



  책을 다 읽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책 표지에 써 있는 것 처럼 '그리스도의 지갑이 딜레마에 빠진' 상황이었던 것 같은데(게다가 하필 얼마 전에 명품 지갑을 선물받았다...;;;), '성경에서 자족, 향유, 나눔의 원리'를 배운 기분이다. 책에서 청부론과 청빈론, 모두를 비판했지만 사실 우리는 이 둘이 가진 정신 모두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청부론에서 말하는 깨끗하게 부자되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자유롭게 누리는 마음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삶의 태도가 '부' 만을 추구하지 않도록 항상 스스로를 경계해야 하겠다. 동시에 가지지 못한 자들, 가난한 자들을 위해 우리의 소유를 즐거이 내어주는 청빈론의 사고 역시 우리에게 항상 필요한 정신일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소유를 더 구제하지 못함에 대한 정죄와 죄책감으로 이어져 금욕주의로 치달아서는 안되겠다.

  그래도 우리는 죽을 때 까지 청빈론과 청부론 사이에서 고민하며 살 것이다. 이리 저리, 왔다 갔다 하며... 그래도, '가짐, 누림, 나눔'을 기억하며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다.


2014년 10월 18일 @inho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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