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야기/독후감 III

무소유의 즐거움, 그리고 소유의 즐거움

inhovation 2016. 3. 3. 15:24

No. 130

무소유

법정 지음

범우사 펴냄


  얼마 전, 첫 월급을 받아  그동안 사고 싶었는데 못 샀던 것들을 죄다 샀다. 학교 다니면서도 수입이 적었던 것은 아니지만 남들이 봤을 때 답답하리만큼 절약하자는 정신이 몸에 배어 있어서 옷도, 신발도, 먹는 것도 필요 이상으로 지출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그동안 쌓아왔던 소유욕구가 이번에 봇물터지듯 터져나온 것이다(ㅋㅋㅋ). 

  그런데 이중에 하나가 근심이 되었다. 바로 가방이었다. 몇 년 동안 '갖고싶다. 갖고싶다.' 하던 가방을 이번에 큰 맘 먹고 지른 것이다. 기준을 어디에 잡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내가 여태 사본 물건 중에 가방 비싼 것이었고 지금 내 형편에서 상당히 고가라고 생각되는 물건이어서 조심히 잘 매고 다녀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상황은 이런 나의 결심에 상당한 방해를 주었다. 아침, 저녁으로 붐비는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는데 어쩔 수 없이 사람들과 부대껴야 하는, 이런 상황 가운데 나는 마음 편히 있을 수가 없었다. 혹시나 가방이 찌그러지진 않을까, 뭐가 묻지는 않을까, 뜯어지지는 않을까 등등. 지하철에서 항상 읽던 책도 전혀 집중이 되지 않았다. 앉아서 갈 때에도 '이렇게 무릎에 올려 놓으면 되는 것인가' 하는 정말 사소할 가치도 없는 마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집으로 바로 와서 가방을 벗어서 다시 포장해 놓았다. 이래서야 가방을 매고 다닐 수 있겠는가, 내 마음을 온통 가방에 빼앗긴 것보단 없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몇 년 전에 사 놓은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었다.(ㅋㅋ) 

 

  2010년 3월 11일, 법정스님은 입적하셨다. 그 당시 법정스님의 가르침을 따라 모든 출판물을 절판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동생과 '야, 이 책은 절판되기 전에 꼭 소장할 가치가 있다!'하는 급한 마음에 사 놓았던 책이다. (내 블로그를 본 사람들은 어느정도 알테지만 나는 책 욕심이 굉장히 많다.ㅋ) 그리고 읽지 않고, '아, 나는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소유한 사람이다.' 하는 모순된 뿌듯함에 젖어만 있었다.(ㅋㅋ) 

  아- 읽으면서 정말 엄청난 깨달음을 계속 얻었다. 역시, 무소유. 음. 가방 따윈. (ㅋㅋ) 이러 생각을 하며 책을 읽었다.

  이 책에 대해 잠시 말하자면, 법정스님의 수필집이다. 총 35편의 짧은 이야기가 있고, 이 중에 한 편이 '무소유'이다. 무소유 이외에 다른 수필들도 마음에 와 닿는 좋은 글이 많이 있다. 꼭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사실 한국사람이라면 무소유의 내용에 대해 교과서에서 한 번쯤은 보았을 듯 싶다. 나도 그런 기억이 있으니. 책을 읽으며 형광펜을 죽죽 그어가며 가슴에 와 닿는 글귀마다 표시하였다. 그 중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말씀은 책의 앞에 따로 소개되어 있다.


무소유의 즐거움

 

  아, 그렇다. 우리는 정말 필요에 의해 산다고 하지만 그 물건들이 우리의 마음을 얼마나 많이 앗아가는가! 비단 이번의 가방 뿐이겠는가. 우리는 항상 새 신발, 새 옷 등에 한동안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새 신발에 맑은 물방울 하나라도 튀면 휴지로 닦아내는 그 정성!

  그러나 이런 물건에 대해서는 일정기간 시간이 지나면 그 정성도 이내 곧 사라지고 만다. 누가 밟아도, 흙이 튀어도 발을 몇 번 구르고 말다 안닦이면 그냥 내비두는 마음에 이른다. 그런데 이 무소유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하다 보니 정말 내 마음을 빼앗은 것은 따로 있었던 것 같다.

 

  바로 주식.

  지금은 하나도 없다. 등록금 내느라 모두 팔고 몇 달이 지났다. 물론 요즘 증시를 가끔 보면 아쉬운 마음도 든다. 아, 저 주식 내가 갖고 있었던 것인데 하는 마음들. 그러나 이전에 주식을 갖고 있던 때와 비교해 보면 내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핸드폰을 통해 수시로 코스피 지수를 확인하지 않아도 되고, 주식이 내려 갈 때에 조급해지는 그런 마음도 안가져도 된다. 바로 이런 것이 무소유의 즐거움 아닐까?

  

소유의 즐거움

 

  그러나, 이런 생각도 들었다. 지난 번에 읽은 박총 전도사님의 '욕쟁이 예수'에 나와있기도 한 내용이고, 교회에서 같은 그룹 사람들과 함께 나눈 내용이기도 하다. 바로 소유의 즐거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허락하셨다. 하나님은 세상을 지으시고 자연의 모든 것을 아담에게 허락하셨다. 바로 이런 말씀을 하면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1장 28절)

 

  불교에서 말하는, 법정스님이 말하는 '무소유'의 가르침도 우리에게 큰 깨달음을 주지만, 기독교적인 시각에 있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들 온전히 누리는 것도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느헤이먀 9장 25절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저희가 견고한 성들과 기름진 땅을 취하고 모든 아름다운 물건을 채운 집과 파서 만든 우물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허다한 과목을 차지하여 배불리 먹어 살찌고 주의 큰 복을 즐겼사오나"

 

  이 말씀처럼 우리는 우리가 갖고 있는 물건들을 통해 즐거움을 경험한다(말씀에는 '즐겼다'고 적혀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책장에 빼곡히 박혀있는 수 백권의 책을 보면서 뿌듯함과 즐거움을 느낀다. 바로 이런 것이 소유의 즐거움이 아닐까?

 

무소유와 소유 사이

 

  기독교인은 무소유보다는 소유의 즐거움을 느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항상 경계해야 하겠다.

 

"저희가 오히려 순종치 아니하고 주를 거역하며 주의 율법을 등뒤에 두고 주께로 돌아오기를 권면하는 선지자들을 죽여 크게 설만하게 행하였나이다 그러므로 주께서 그 대적의 손에 붙이사 곤고를 당하게 하시매 저희가 환난을 당하여" (느헤미야 9장 26절 - 27절 상)


  바로 소유의 즐거움에 대해 말한 느헤미야 바로 뒤에 오는 구절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소유물에 대해 그것에만 집중하고 하나님을 떠날 때, (비 기독교인이라면 마음이 빼앗겨 중심을 잃었을 때 라고 표현해도 괜찮겠다) 우리에겐 어려움이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법정스님의 같은 경우는 지인으로 받은 난 때문에 가던 길을 되돌아 가야 했고, 나 같은 경우에는 가방 때문에 전철에서 책을 못 읽었다(ㅋㅋㅋㅋ).

  무소유와 소유. 둘 중 어떤 것 하나가 좋다 나쁘다를 판가름하기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이다. 무소유의 삶을 살면서도 소유의 마음으로, 소유의 삶을 살면서도 무소유의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우리네의 삶이 더 행복하고 풍요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ps. 가방은 어떻게 되었는가

  매고 다닌다.ㅋㅋㅋㅋㅋㅋ ^^; 사실, 창세기의 말씀,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말씀은 어머니께서 해주신 말이었다. 비싼 가방을 산 아들에 대한 질타를 우선 하셨지만 그동안 아들이 제대로 소유하지 못하고 지낸 모습을 보며 안타까우셨는지, 다시 곱게 접어 포장해 놓은 가방을 보며 어머니께서는 왜 그러냐며 물으셨다. 그래서 이런 비싼 가방 매고 다니니까 자꾸 신경쓰인다고 하니 해 주신 말씀이 창세기 말씀이다. 그러면서 그냥 매고 다니라고...(ㅠㅠㅠㅠㅠ)

  이러고도 조금 갈등 했지만, 만약 이 가방을 내 손에서 떠나보내면 나는 다시 무소유의 삶을 살면서 무소유의 마음, 궁핍한 마음으로 항상 '가방 사고 싶다'는 생각에 마음을 빼앗길 것 같아서 그냥 매고 다닌다. ^ㅡ^ㅎㅎ

 

  글을 쓰고 나서 생각해 보니 조금 애매할 것 같은 부분이 있을 것 같아 보충한다. 소유의 삶. 너무 과장되면 이 역시 옳지 않을 것이다.

 

적당한 소유를 누리며 살아야지 '소유욕'에 사로잡혀 사는 것은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


2012년 4월 6일 @inho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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