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야기/독후감 III

나만의 삶을 위해

inhovation 2016. 3. 4. 09:25

No. 161

생애의 발견

김찬호 지음

인물과 사상사 펴냄


  결혼을 준비하며 아는 동생이 소개해준 책이다. 처음엔 '결혼식' 파트만 핸드폰으로 찍어서 보내줬는데, 읽어보니 엄청나게 공감이 되어서 책을 바로 사서 읽어보았다. 처음에는 결혼식 부분만... 한 3-4번 읽은것 같다. 그러나...! 새로운 결혼문화를 제안하고 있는 저자의 생각을 따르기엔 결혼식 준비가 상당히 많이 진행되어 있었다. 주례없는 결혼식을 하기엔 이미 주례를 부탁해 놓았고, 새로운 형태로 결혼식을 치르기엔 이미 날짜나 형식이 기존의 결혼식과 비슷하게 진행할 수 밖에 없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점을 놓고 책을 추천해 준 동생과 이야기하다 보니 꼭 이 책에서 제안한 대로 하는 것이 정답은 아니라고 하는 말을 해줘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ㅋ

  결혼식 부분만 수차례 읽고 나서 결혼식을 그래도 잘 치렀다. 그리고 나서 천-천히 나머지 부분들을 읽어 나갔다. 이 책은 한국인들의 생에 전반을 다시 바라보고 있다. 목차는 아래와 같다.


1장 성장과 자립

  유년, 마음껏 뒹굴고 싶다

  사춘기, 길찾기의 어려움과 즐거움

  공부, 지성이 자라나는 뿌듯함

  이십대, 동지를 만나고 일거리를 만들고

  삼십대, 생애의 속살을 엿보다

2장 남과 여

  연애, 또 다른 행성으로의 모험

  싱글, 마음과 대화하는 자유 시간

  결혼식, 경건한 어울림의 예악(禮樂)

  부부, 사소한 것들의 중요함을 배운다

  외도, 바깥의 길은 어디로

3장 양육과 노화

  어머니, 자궁의 힘은 무엇인가

  아버지, 그 침묵이 말하는 것

  중년 여성, 갱년을 어떻게 할 것인가

  중년 남성, 이모작의 갈림길에서

  노년, 무(無)를 향한 정진


  앞에 썼듯이 처음에는 결혼식 부분만 읽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유년부터 부부까지. 그리고 한참 지나서 외도부터 노년까지 다 읽었다. 이미 살아온 이야기에 대해서는 공감되는 부분이 많이 있었다. 원래는 부부 이후부터 읽지 않고 나중에 천천히, 내가 그 과정을 겪어 나갈 때마다 읽을까 했었다. 앞부분을 읽으면서 이렇게나 공감가는 이야기들인데 아직 살지 않은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 뭔가 인생을 미리 사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어서였다. 그러다가 그냥 읽기로 마음이 바꼈는데, 그럼 노년은 한 50년 후에 읽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안읽고 계속 두기에는 뭔가 찝찝한 기분도 들어서 다 읽었다. 읽고 나니, 예상했던바와 같이 인생을 미리 산 느낌도 없지 않아 있지만...ㅋㅋ 그래도, 어머니, 아버지 부분을 읽으면서는 결혼하면서 뭔가 생각이 많아졌던 나의 부모님의 삶을 바라보고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감명깊게 읽은 결혼식 부분은, 결혼식의 의미부터 시작해서 사회적으로도 지금 많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결혼식의 모습이나 비용에 대해 잘 다루어 놓았다. 허례허식이 많은 결혼식, 본질이 달라진 결혼식을 많이 꼬집었다. 이런 부분들은 나도 결혼 전에 상당히 많이 생각하고, 그런 결혼식이 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고자 했던 부분이다. (내 결혼식이 그렇다고 기존에 많이 치러졌던 결혼식과 많이 달라진 것은 아니겠지만...)


결혼식은 그 어느 의례보다도 절대적인 의미를 갖는다. 다른 의례들이 점점 상실해가는 사회적 효력을 결혼식만큼은 굳건하게 담보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돌잔치나 생일파티나 회갑연을 치르지 않았다 해서 나이가 한 살 더 많아졌음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입학식 참가 여부가 학생 신분의 획득에 영향을 끼치지 않고, 졸업식에 빠졌다 해서 졸업장이 무효화되지 않는다. 기관장이 정년퇴임식을 갖지 못했다 해도 퇴직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떤 사람이 사망했다 할 때 우리는 장례식을 치렀는가를 따지지 않고 그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인다.

그런데 결혼식은 다르다. 법적으로 따진다면 혼인신고만 하면 부부로서 자격을 획득하고 관청에 등록된다. 그러나 그 절차만 밟고 결혼식을 올리지 않으면 지인들에게 부부로 인정받기 어렵다. 만일 혼인신고만 하고 동거를 하다가 임신을 한 채 결혼식을 올리는 부부가 있다면, 하객들은 그 불룩한 배를 보고 '속도위반' 이라고 히죽거릴 것이다. 그와 반대로 결혼식을 올려 놓고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부부로 인정한다. 그리고 그렇게 살다가 갈라섰다면? 주변 사람들은 물론 본인들도 '이혼'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말한다. 법적으로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도 말이다. (pp. 162-3)


우리의 결혼식은 가족행사인가? 그렇다면 가까운 친지들만 모여서 조촐하게 치르는 것이 맞다. 손님 대접하느라 이것저것 비용 들이며 신경쓰는 대신 온전히 결혼식 자체를 알차게 꾸릴 수 있다. 가족행사가 아니라 사람들을 널리 불러 모으는 잔치인가? 그렇다면 제대로 대접하자. 하객 한 명 한 명을 VIP로 귀하게 모시자. 축의금을 내고 식권을 받아 밥 한 끼 얻어먹는 듯한 기분을 선사하지 말자. 그런 홀대를 받은 사람이 혼주가 되어 결혼식을 주최하면 똑같은 식으로 손님들을 대하게 된다. 그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바꾸려면, 인간에 대한 예의와 상식을 회복해야 한다. (pp. 168-9)


  삶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책은 많이 있을텐데, 이 책이 특별히 좋은 것은 '한국인은 어떻게 살아가는가'라는 부제에 맞게, 한국 사람들의 삶을 재조명 했다는 것이다. 나면서부터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국이라는 나라,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유년과 청소년, 청년과 중년, 그리고 노년까지 전 생애를 아우르는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큰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이유는 현 시대 상황에 맞는 각 나이대의 삶을 이야기 각각 분석해서 서술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금 한국인들이 통과하는 생애경로는

비슷한 행로의 반복이 아니다.

윗세대가 밟았던 길을

아랫세대가 따라가지 않는 것이다.

- 머릿말 중 -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모습이 우리 한국인들의 삶에 있어서 정답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다시금 반추해 보고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지 생각할 수만 있다면 괜찮은 것 아닐까. 다른 나라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유난히 한국인들은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의 삶과 견주어 보고 비슷하게 살려는 경향이 많은 것 같다. 무리 안에서 조금이라도 튀는 사람이 있으면 손가락질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인생이 남들보다 더 튀지 않으면 무척이나 실망스러워 한다. 이제, 정답없는 인생을 향해 '나만의 삶'을 만들어가야 하겠다.


"우리는 생활비를 버는 법은 배웠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는 배우지 못했다.

우리의 수명은 늘었지만

시간 속에 생기를 불어넣지는 못하고 있다."

"We've learned how to make a living,

but not a life.

We've added years to life

not life to years."

- 머릿말 중(밥 무어헤드 ' 우리시대의 역설') - 


2014년 9월 12일 @inho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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