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여행 D-62, 고민, 예약, 그리고 결제

2014. 10. 31.

  하노이 행 비행기표를 결제했다. 2015년 1월 1일 출국, 2월 16일 귀국. 총 47일간의 여행이 될 것 같다. '결심'이라는 '결실'을 맺기까지, 최근 몇 달 동안의 엄청난 고민의 과정이 있었다. 길고 긴 이야기를 잠시 정리하며 풀어보려 한다.

 

 

 

  2년 전, 결혼하기 전에 좋은 기회로 인해 아내는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그것도 미국으로. 그리고 올 초 신혼여행으로는 유럽을 다녀오고. 그리고 나서 느꼈는데, 아내가 '해외여행에 맛 들렸다' 그래야 할까, 나에게 그 이후로도 계속 여행을 다니고 싶다는 말들을 종종 했었다. 그런데 이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대학생활 내내 해외여행 한 번 다녀보지 못하다가 4학년 2학기가 되어서야 교육실습 겸 인도네시아에 다녀온 해외여행 첫 경험 이후, 나 역시 해외여행에 대한 향수(?)가 심했다. 그러다가 대학원에서 중국으로 세미나를 다녀오고 나서는 스물 일곱, 조금 늦은 나이에 처음으로 혼자 베트남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그리고 나서 나도 미국을 다녀오고 했던 거고... 신혼여행 이후 아내와 나는 일본여행도 다녀오고, 최근에는 캄보디아도 다녀왔다. 그래도 아내는 여전히 배고팠다. 이쯤이면 됐겠지 했지만, 병원에 정식으로 발령 나기 전, 해외여행을 한 번 더 가고 싶다고... 홍콩-마카오나 대만 쪽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하긴, 병원에서 일 하기 시작하면 몇 년간은 밤낮은 물론이거니와 주말도 없이 일하고, 휴가나 제대로 쓸 수 있을지 모르는데...

  이번 동남아 여행의 동기가 약간 아내 때문인 것처럼 썼지만, 사실 나도 여행을 싫어하진 않고 기회만 된다면 많이 가 보고 싶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 돈이 많아도 시간이나 건강이 허락하지 않다 못 간다고 하지 않던가, 젊었을 때는 항상 시간과 돈 모두가 문제인 거지. 이런 면에 있어서 내년 초, 우리 부부는 어떻게 하다 보니 여행에 필요한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함께 여행하려면 두 사람 모두 시간이 맞아야 하는데 운이 참 좋은 거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운 아닌 운을 만든 것일 수도. 나는 12월까지만 계약이고, 아내도 정식 발령 전에 지금 일하고 있는 곳에서 잠시 동안만 일을 하기로 한 것이라 12월까지만 출근하고 어렵지 않게 일을 그만 하고 시간을 낼 수 있는 것이니...

 

  그러나 고민하면 고민할 수록 여행을 하기 위해 일을 그만두는 것인지, 일을 그만두게 되어 여행을 계획하고 준비하는 것인지는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 어찌됐건, 고민은 엄청 했다. 거의 한 두 달은 계속 비행기표를 알아본 것 같다. 미국 여행 때도 그랬지만, 일을 그만두고 여행을 간다는 것이 단순한 여행경비만 고려하게 되는 게 아니라, 일을 할 수 있는데 못하는 것에 대한 기회비용까지 생각하게 되니 경제적인 면이 엄청나게 부각되어 보인다. 그래서 고민이 많이 되었던 것 같다.

 

  처음 계획에는 두 달 가까운 시간 동안 여행을 하게 된다면 유럽을 가는 것이 어떨까 싶었다. 비행기표는 120만원 정도로, 생각보다 싸게 나와 있었고, 도시 간 이동은 저가항공을 적절히 이용하면 될 것 같았다. 신혼여행 때는 로마와 파리만 갔었는데, 가보지 못한 도시들을 쭉- 둘러보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여행경비를 대강 계산해보니, 이동에 필요한 경비만 해도 왕복비행기표와 저가항공, 그리고 기차나 버스 비용까지, 대략 300은 들 것 같았다. 먹는 것, 잠자는 것을 대강만 계산해도 300-400은 들 것 같았다. 기타 입장료나 각종 여행 경비까지 하면 거의 800이 넘어가는, 지금 기준에는 어마어마한 예산. 물론, 나중에는 800이란 돈에 대해 조금 덜 고민하는 나이가 될 수도 있고, 지금 800만원을 지출해 부부가 함께 유럽여행을 가는 게 좋을 수도 있다. 어쩌면, 무리해서 간다고 하면 두 눈 딱 감고 갈 수도 있다. 그래도, 이건 너무 무리인 것 같았다. 우리는 유럽여행을 포기하는 이유를 시기가 겨울이라 짐도 무겁고 여행 하기에도 그리 좋은 날씨가 아닌 것으로 탓하고 과감히 포기했다.

  그래서 떠오른 대안이 따뜻한 남쪽나라, 동남아다. 물론, 계획이 유럽에서 바로 동남아로 넘어온 것은 아니었다. 미국여행도 생각했다. 차를 빌려서 미국 횡단 여행. 또는 이메일을 주고 받는 미국 친구, 텍사스에 사는 할머니를 찾아가는 것. 그 외 여러 가지 계획들... 그러나 미국 역시 겨울의 추운 날씨일 것이고, 공교롭게도 지난 번 미국에 갔을 때도 1~2월이라 시기 역시 똑같았다. 그래서 탈락. 또 생각해 본 곳으로는 아프리카. 근데 아프리카는 뭔가 무서웠고, 인도 역시 아내가 그리 원하지 않았다. 내 생각엔 인도도 괜찮을 것 같긴 했지만 뭔가 익숙하지가 않고 나도 살짝 무서운 느낌... 호주는 뭔가 볼게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남미는 너무 멀기도 하고 인도보다 더 어려울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익숙하고 따뜻하고 비교적 저렴하게 다녀올 수 있는 동남아로 결정!

 

  운 좋게 하노이, 왕복, 제주항공이 30만원 대에 있었다. 20만원부터 있었지만, 이런 표들은 이미 대기. 사실 하노이 표도 1-2주 전부터 알아보고 있으면서 34만원 정도도 봤었지만, 고민하는 사이에 싼 표들이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결국 38만원 정도까지 올랐고, 우리는 마지막으로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예약을 했다. 결제를 하려고 했으나, 아내가 결제는 내일 하자고 했다. 생각이 바뀌었냐고 물어봤는데 그건 아니란다. 그냥 내일 하자고...

  가기로 마음을 굳히고 예약까지 했는데, 결제를 안 하니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과연 이 여행이 바른 선택이었을까. 그날 밤, 그리고 다음 날 출근을 해서 고민을 하면서는 회사에 그냥 남아서 내년에도 일을 할까도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여행을 가서 아내와 좋은 추억을 남기고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이 조금 더 끌렸다. 그리고 어제 친구 K와 점심을 먹다가 한 얘기가 다시금 내 결심에 큰 도움이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친구로 지냈던 K는 대학교 들어간 이후부터 더 친해졌던 것 같다. 그리고 이후 평소 고민이나 얘깃거리들을 서슴없이 나누곤 해서, 이번 여행을 고민하는 것도 넌지시 한 번 물어봤었다. 그러다 이번에 점심을 먹으며 하는 얘기가, 자기 엄마에게 내 얘기를 했다고 한다.

 

"엄마, 인호는 올해 말까지만 일하고 한 두 달 유럽 여행 다녀올지도 모른대, 둘이서."

"다녀 와서는 뭐 한대?"

"몰라, 그건 모르고 그냥 시간 내서 다녀온다는데? 엄마는 어떻게 생각해?"

 

그리고 잠시 고민하시더니,

 

"멋지네."

 

라고 하셨다고 했다.

 

"그래? 난 무서워서 못 그럴 것 같아."

"지금 엄마라면 못 하겠지만, 엄마가 만약 인호 나이라면 그렇게 할 것 같아."

 

  멋지네. 이 한 마디가 내 가슴을 울렸다. 아내와 전화를 하며 이 얘기를 들려주니 아내는 눈물이 날 것 같다고 했다. 전화를 하다가 청첩장 문구가 생각났다. 내가 직접 쓴 청첩장 문구.

 

7년 동안 함께했던 사랑으로 이제

세상의 아름다움을 함께 보며

소중한 것을 함께 간직하려 합니다.

행복으로 나아가는 첫 걸음에

축복과 격려로 함께 해 주시면 큰 기쁨으로 간직하겠습니다.

행복의 비밀은 이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보는 것,

그리고 동시에 숟가락 속에 담긴 기름 두 방울을

잊지 않는 데 있도다.

-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 中

 

  '세상의 아름다움을 함께 보며...' 아름다운 것의 정의가 굉장히 주관적이기도 하고, 꼭 여행을 가서 보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지금 나에게는 여행을 가서 우리가 평소에 보지 못했던 것들을 함께 보고 추억을 남겨오는 것이 '소중한 것을 함께 간직'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날 밤, 바로 항공권을 예매한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인 바로 오늘, D-62 점심시간에 결제를 했고...

  여행을 마치고 나서 나의 대책은 아직 없다. 그러나 함께 비교적 오랜 시간 고민하고 결정한 여행. 훗날 우리가 이 시간을 다시 바라보았을 때, 그때 그 여행은 정말 잘 한 일이었노라고, 함께 추억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