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간호사 아내를 둔 남편이다. 그리고 아내는 요즘 핫한 대학병원에서 근무한다.
기사를 보고 마음이 아팠다. 전혀 남 일 같지 않았다. 얼마 전, 아내가 근무하는 병원 '고객의 소리'에 올리려고 글을 남겼었는데, 아내가 그러지 말라고 말려서, 그럼 블로그에 따로 기록만 해 둔다고 해놓고 있었는데, 최근 일어난 사건을 보고 얼른 다시 정리해 두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2014년 사번으로 대학병원에 합격했다. 마지막 학기를 2013년에 다녔고, 이 때 2학기에 병원은 합격, 간호사 자격시험은 다음해 1월에 보았다. 대학병원에 근무하면 스케줄 조정도 쉽지 않으니 결혼도 서둘러 했다. 3월에. 그러나 1년이 넘는 대기 끝에 2015년 여름부터 병동에 발령받아 근무를 시작하였다.
간호사라는 직업 자체의 힘듦과 3교대 근무로 오는 체력적 한계, 그리고 다른 병원에 비해 아내가 근무하는 병원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태움'이라는 것으로 인한 정신적 괴로움 등 여느 신규 간호사처럼 아내도 힘든 시절을 보냈다. 나도 회사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시간이 되서 데이 근무일 때에는 항상 새벽에 태워다주었고, 이브닝 근무일 때에는 항상 병원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집으로 데리고 왔다. 새벽에 출근하기 싫다며 병원에 다 도착했는데 울면서 차에서 내리지 않았던 날들, 11시, 12시, 때로는 1시가 넘어서 퇴근하며 차에 타서 울며 일을 그만 두고 싶다고 했던 날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심지어 집으로 가는 방향이 비슷해서 집에 데려다주는 아내의 간호사 동기들도 차에서 울며 퇴근했다. 그럴 때 마다 그만 두라고 했지만 아내는 이를 악물며 버텨냈다. 그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아내에게 병원 이야기를 들었는데, 몇 주 만에 그만둔 사람, 몇 달만에 그만 둔 사람, 별별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태우는 이야기 등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일들이 많았다.
2016년 4월, 아내는 첫 아이를 가지게 되었고 나이트 근무 없이 출산휴가 전까지 데이와 이브닝 근무만 하였다. 임신 기간 중에도 태움, 태움 비슷한 것들, 폭언에 가까운 비방(임신한 게 대수냐 등 산모에게 정신적으로 큰 충격이 올 수 있는 말 등)을 들으면서도 아내는 버텼다. 진짜 너그럽게 생각해서 환자들의 생명을 다루는 일이니 '긴장하자'는 의미에서, 직업의 특성상 이런 것들(태움)이 어쩔 수 없다고 조금은, 아주 조금은 이해도 되긴 한다. 사망하는 환자들도 수시로 발생하는 병동에서 항상 웃으면서 밝게 일 할 수만은 없을테니까. 그래도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일인가?'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얼척없었던 것은, 혈당계를 선배 간호사보다 먼저 챙겨갔다고 해서 하루 종일 털렸다는 동기의 이야기. 하도 많이 들어서 생각이 안 난다.
여튼, 일 자체의 힘듦, 동료와의 힘듦 등 여러가지 힘든 여건 속에서도 아내는 잘 벼텨주었고, 2016년 10월까지 근무를 하고 출산휴가에 들어갔다. 그리고 11월, 아이를 낳고 병원에서 규정상 정당하게 부여해주는 휴직 기간인 1년 3개월(출산휴가 3개월, 육아휴직 1년(최근에 1년 반으로 늘어났다고 하더라))을 마치고 복직을 했다.
복직. 복직 전에도 진짜 고민이 많았다. 지나간 휴직 기간이 남은 휴직 기간보다 많아지면서 아내는 복직을 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마지막 출근을 하며, 다시는 복직하기 싫다며, 이쪽인 쳐다보기도 싫다고 해서 이사까지 갔었다. 내 직장 가까운 곳으로. 아내 병원과는 50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사실상 아내 혼자 3교대 출근을 하기 힘든 곳. 그러나 아내는 가정경제와 커리어를 고려해서 복직 or 다른 병원에서 외래근무라도 해야 하지 않나 고민이 점점 깊어졌다. 이제 갓 걸음마를 떼고, 어느 정도 의사소통은 되지만 말은 하지 못하는 아이를 두고 우리 부부는 수개월 동안 심각하게 고민했다. 다시 3교대 근무를 시작해야 하는 것인가. 아이가 이제야 뭘 좀 알면서 엄마와 애착이 형성되는 것 같은데 불규칙한 엄마의 스케줄에 정서적으로 혼란이 오는 것은 아닐까 등등. 아이를 낳고 길러봤던 사람이라면 가슴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나는 아내가 신규로 발령이 나고 그 힘들었던 때를 바로 옆에서 그 누구보다 가까이서 보아왔기 때문에 복직을 절대 반대했다. 몇개월 더 쉬고 다른 병원 외래로 일 하는 것은 어떨지 얘기하면서. 그러나 아내는 아이가 조금씩 커감에 따라 워킹맘으로서 자랑스러운 모습도 보이고 싶고, 지금 이 대학병원도 나쁘지 않으니 갈등을 하면서도 복직을 결심했다. 남편된 입장에서 걱정과 우려도 많았지만, 그래도 아내가 '대학병원'에서 일한다는 자부심도 없는 것은 아니었고, 힘들긴 했어도 아내가 전 병동에서 일을 잘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마지못해 허락해 주었다. 그리고 다시 병원 출퇴근이 용이하면서도 처가 근처로 이사도 왔다.
(Free image from Unsplash)
그러나.
새로운 병동으로 발령을 받고 나서 아내의 다짐은 처참히 깨졌고 나의 응원과 자부심은 분노로 바뀌었다. 신규 때와 비슷하게 프리셉터로 2주 간 교육을 시켜주기로 한 간호사의 견딜 수 없는 언행때문이었다.
- 육아휴직 1년을 다 쓰고 와서 이렇게 다 까먹었냐는 인신공격형 폭언
- 나이를 물어보고 동갑이라는 것을 안 다음부터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쓰지 않고 항상 '야, 야' 라고 소리지르며 업무를 가르치는 예의없는 태도(이 부분이 제일 빡쳤음)
- 새로운 병동에서 새로운 일을 배우고 있는데, '넌 못할 것 같다' 등의 자존감을 짓밟아 버리는 비난과 무시
(문장 그대로 '넌' 못할 것 같다 라고 들었다고 함)
더 있지만 아내가 자세히 이야기 하지 않았고, (말 할 수록 상처니까) 나도 더 듣고 싶지 않았다. 이미 화는 충분히 나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2017년 1월 31일 수요일부터 출근하여, 수 목 금 데이 근무였는데, 내가 해외출장 중이라 한국에 없어서 금요일 저녁에 이 모든 것을 자세히 들었다. 우는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출근한 아내의 마음과, 또 정신적으로 힘들었을 아내를 생각하니 한 아이의 아빠로, 남편으로 분노를 감출 수 없었다. 이러려고 육아휴직 기간 동안 그렇게 수 개월 복직을 고민했나 싶었다.
아내가 신규 간호사일 때는 들어보지도 못했던 말들이다. '야'라니... 나는 그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 어떤 동료, 팀장, 부장님께도 '야' 소리를 듣지 못했다. 직장에서 선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너그럽게 이해해서 친해지면 저런 호칭이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은 한다. 그러나 알던 사이도 아니었고 며칠 봤다고 나이를 물어보고 호칭을 비인격적으로 바꾸다니. 이런 사람에게 몇 주 동안 비난과 모욕을 받으며 병원을 계속해서 보낼 수 없어서 내가 토요일 새벽에는 나가지 말라고 붙잡았다. 그만 두라고 하며.
...
그 때에는 더이상 아내가 대학병원 간호사였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도 갖지 않으려고 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린다고, 단 한명으로 인해 병원의 이미지가 모두 망가졌다. 아내의 첫 직장이자 우리 아이가 생후 17일에, 고열로 응급실을 통해 신생아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다가 RSV를 진단받고 잘 치료받아 퇴원해서, 개인적으로는 그 병원이 특별하기도 하고 빚진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마음들을 모두 그냥 버리고 싶었다.
주변에 이런 이야기를 하니 요즘 군대에서도 '야'라는 호칭은 쓰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재밌는 것은 병원에 실습을 나온 학생들에게도 어법에 맞지도 않는 '학생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쓴다고 한다. 아직 대학생인데 존칭은 붙여야겠고, 학생님은 좀 이상했는지, 만인의 존칭어 선생님을 붙여 '학생 선생님'이라니.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집단이 모여있는 의사들이 이런 단어를 쓴다는 것도 정말 웃겼는데, 아내는 더 사번이 낮은 간호사, 환자, 보호자, 다른 동료 및 의사, 심지어 '학생 선생님'들 앞에서, 모든 사람이 보고 있는 곳에서 3일 내내 '야'라고 하며 명령조로 트레이닝을 한 그 간호사의 행동을 생각하면 지금도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
한 주가 지나고 월요일, 사직서를 쓰러 아내는 병원에 갔지만 수간호사 선생님과 간호팀장의 면담(사직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후에 사직서를 쓴다고 했지만, 간호팀장님의 부재로 인해 수간호사 선생님만 면담을 했다. 그리고 예의상 전 병동 수간호사 선생님을 만나서 이야기도 하고. 여기서도 조금은 어이가 없었던 게, 새로 발령받은 병동의 수간호사 선생님은 프리셉터를 두둔했다는 것이다. 뭐, 병동의 수간호사로써 직원 한 명의 편만 들 수는 없겠지만, 한 번 더 놀랐던 것은, 그럼 3자대면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아내의 마음은 1도 모른채로. 이건 마치, 폭행을 당한 피해자에게 가해자와 함께 만나서 문제를 해결해 보면 어떻겠냐고(=네가 왜 맞았는지 이유를 들어보자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다행히도 전 병동 수간호사 선생님은 그래도 1년 넘게 같이 일해서 그런지 (아님 정상적인 분이라 그런지) 아내의 마음을 위로해주었다.
다음날, 간호팀장 면담을 하는데 아내는 사직서를 못쓰고 새로운 병동으로 다시 발령을 받았다. 간호팀장은 아내가 말한 모든 문제를 듣고 시정조치 하겠다고 했다. 아, 이런 것도 있었다. 병동 근무를 하며 알아야 하는 것들이 있는데, A4 50장 정도, 전 병동에서는 회비를 걷고 있었고, 그 회비로 이런 것들을 제본해서 나눠주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새로 발령받은 곳에서는 회비는 걷으면서도 그 종이를 모두 다 잘라서 노트에 풀칠해서 붙여오라고 했던 것이다. 그 ㅄ같은 프리셉터가! ...무슨 초딩도 아니고... 아내는 퇴근하면 아이를 보느라 가위질, 풀질 할 시간이 당연히 없었고, 이걸 못해가면 또 트집잡아서 태울 것이 뻔하니까 더 가기가 싫었던 것이다. 물론, '야'라고 했던 것부터 이런 것들까지 모두 간호팀장에게 말했고, 간호팀장은 (아내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말 천사와도 같이 아내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잘 설득해서 병원에 남게 한 것이다. (간호팀장님은 아이를 낳고 친정에 맡기고 일을 해서 1년 동안 아이를 보질 못했다고, 1년 후 아이를 만나니 걷고 있었다고)
다행히도 세 번째 발령받은 병동은 프리셉터도, 선후배 간호사들도, 수간호사도 모두 다 착하고 두 번째 병동에서 당했던 그런 폭언과 수모는 전혀 없다고 한다. 이런거 보면 병원이란 조직에도 ㅄ들만 모여있는 팀이 있나보다. ...
뭐, 이런 이야기를 병원 홈페이지에 쓰려고 했다. 일요일이었으니까, 수간호사 선생님 면담이 시작되기 전, 분노가 아주 극에 달했을 때다. 게시판은 아니고 병원 고객의 소리함에다가. CS가 중요하다고 하는데, 이런 간호사들이 있는 곳에서, 또 이런 간호사들에게 교육받은 간호사들이 진정 CS를 이룰 수 있겠냐며, CS를 외치면서 외부 고객만 생각하지 말고 내부 직원 교육에도 신경 쓰라고, 그리고 직원의 가족들은 고객인데, 이런 생각을 고객들이 가지면 너네 병원은 CS가 되겠냐며, 뭐 이런 식으로...
그런데, 아내가 진짜 극구 말렸지. 이거 쓰는 순간 프린트 되서 병원데 쫙- 뿌려지고, 전설처럼 남게 된다고... 그래서, 다 써놓고 참았다. 진짜 다행히도 간호팀장님(정말, 간호팀장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닌듯) 덕분에 아내가 다시 잘 적응해서 이제 2주 정도 되었는데, 당분간 둘째 생기기 전까지는 잘 버틸 것 같기도 하다. 지금도 열심히 이브닝 근무중인데. ...
여튼, 최근 일어난 신규 간호사(아내는 나이도 많아서 나처럼 늦게 입사했는데 견디기 정말 힘들었을거라며 너무 안타까워했다)의 안타까운 사연은 나도 가슴이 너무 아프다. 해당 병원에서는 FM처럼 큰 문제는 없었다고 둘러대는데, 정말 말도 안되는 것 같다. 정말, 조사를 해서 다른 개인적인 일 때문이었다 하더라도, 신규 간호사의 태움문화는 정말 너무 심각하다. 이건 신규 간호사를 바로 옆에서 1년 넘게 봤던 내가 잘 안다. 다른 병원에서 일'했던' 아내 학교 동기는 수술실이었는데 조용히 집중해야 하는 분위기라 꼬집힘을 당하는 등 신체적 폭력을 당했다고 한다. ... 병원, 간호사 관련해서 들었던 것도 많고 할 얘기도 많지만,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정리해 보는 것으로 하고, 육아휴직의 결론이 퇴직이 될 뻔한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려고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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