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이야기

나의 첫 번째 집을 떠나며...

inhovation 2018. 1. 8. 02:19

현재시각 2018년 1월 8일 새벽 1시 34분.


아침 8시에 이사짐센터에서 온다 하여 (포장이사라 하지만) 짐 정리를 끝내고 집 여기저기 사진을 찍었다. 이번 이사는 결혼하고 두 번째 이사이다. 첫 신혼집은 본가/처가와 멀지 않은 작은 빌라 전세였다. 그리고 지금, 오늘로 마지막인 이 집은 처음으로 우리가 산 작은 아파트이다. 본가/처가와는 조금 멀리 떨어져 있고, 대신 회사와는 차로 15~20분 거리이다. 이곳으로 오게 된 이유는 아내가 임신을 하고, 복직을 하지 않겠다고 해서, 그럼 내 회사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가는 게 나을 것 같아서였다. 당시 나는 회사 셔틀버스를 타며 출퇴근을 했었는데 왕복 5시간, 한강을 4번 건너며 회사를 다녔었다. ...

이사오고 일주일만에 세온이가 태어나서 이곳에서 둘만의 추억은 거의 없다. 기억이 안 날 정도. 그러나 셋의 추억은, 너무나도 많다. 일일히 기억하기 힘들 정도. ...

이 집을 알아보기 위해 8월 즈음, 아내와 함께 차로 한시간을 달려 처음 연고도 없는 이쪽 동네에 왔었다. 배가 많이 나온 아내를 데리고 미리 연락했던 부동산 사장님을 만나 집을 보러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녔다. 마음에 드는 집이 추려지고 그 날은 계약을 하지 않은 채로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인가, 다다음날인가, 한 번 더 보기 위해 나는 회사에서 아파트로, 아내는 지하철에 버스를 2시간 가가까이 타고 이 동네로 왔다. 결국 마음에 드는 집으로 계약. 융자가 있었지만 문제 될 건 없었다. 매매에서 정상적인 융자는 이상한 게 아니고, 나도 결국 융자를 받을 거니까. ㄷㄷ 이렇게 우리 집이 생기는 것인가.

이사는 11월 10일. 계약서는 9일이었는데, 당시 전주인이 독실한 불교 신자 같아서, 집에 부적도 있고 반드시 이사는 손 없는 날 해야 한다고 해서 그렇게 했었다. 우린 그 때 손 없는 날이 뭔지도 몰랐었는데, 우리의 결론은 손 없는 날 = 이사 비용 비싼 날. 이었기 때문에 우린 9일에 매매 계약은 하고 이사는 10일에 들어왔다.

이사짐을 내려놓는 동안, 집 앞 낙지덮밥 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집 앞 보건소에서 아기 청력검사였나, 이런 쿠폰(시 혜택)을 받았다. 그리고 저녁에는 짜장면을 시켜먹었다. 탕수육도. 배달이 정말 빨리 와서 감명깊었는데. 지금까지 1년 2개월을 더 살면서 언젠가 라조기였나, 한 번 더 시켜먹은게 전부였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이날 저녁인가, 우리 둘 다 알지도 못하는 동네를 걸어서 돌아다녔던 것 같다. 다이소에 가려고 지도를 검색해서 길을 익히고 나갔다. 그런데 이 동네가 그렇게 산인지는 몰랐다. 전철역 근처에 다이소가 있었는데 우리집에서 가는 길이 엄청 내리막이 있어서 깜짝 놀랐다. 반대편에 보이는 곳은 또 오르막. 약간 아내랑 이때 했던 얘기가, 샌프란시스코 느낌 난다고. ㅋㅋㅋ 롬바드길...ㅎㅎㅎ 만삭인 아내와 함께 엄청 언덕을 내려가고, 또 돌아오는 길은... 언덕을 올라오고...ㅎ 이때 롯데리아에서 아이스크림도 사먹었는데... 다이소 가서는 뭘 샀는지는 모르겠다. ㅎㅎ 이 때가 아내와 이 동내에서 처음이자 마지막(ㅠ) 데이트. 이후로는 계속 세온이도 있고 했으니 차만 타고 다녔지. ...

11일(금)에는 내가 회사를 일찍 퇴근하고 양평에 콘도로 놀러를 갔다. 언젠가 별 보러 양평에 갔었는데 당시 날씨가 안좋아 재방문 할 수 있다 해서 셋이 되기 전에 얼른 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토요일에 집에 오면서는 두물머리도 가고 그랬던 기기억이...

13일(일)에는 교회 다녀오는 길에 아내가 계속 배가 아프다고 했다. 너무. 아직 예정일까지는 보름 정도 남아서 조금 이르긴 했지만, 운전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긴장을 많이 했었던 것 같다. 지금도 그 길을 지날때면 이 때 생각이 난다.

14일(월), 15일(화)은 퇴근하고 6시 30분을 갓 넘겨 집에 와서 아내에게 엄청 자랑을 했던 기억이 난다. 완전 삶의 질이 다르다며. 이틀간 집에서 뭘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뭐 이사짐 정리 했겠지... 아 점심때 즈음 병원을 언제 갔다. 월요일인가 화요일인가.

16일(수)에는 아내가 오전에 혼자 창 밖으로 아파트 단지 안에 수요일마다 서는 장터 구경을 했다고 한다. 오후에 한 번 가보면 좋겠다고. 그리고 점심에 내가 김밥을 사서 집에 와 아내를 데리고 다시 차로 한 40분?정도 거리에 있는 스튜디오에 만삭촬영을 하러 갔다. 그리고 백화점에 내려주고 나는 회사로. 그런데 5시 즈음 전화가 왔다. 집에 돌아가는 버스 안인데 양수가 흐르는 것 같다고. ... 그렇게 나는 1시간 조퇴를 하고 바로 집으로 가(아내는 집에 거의 다 도착한 상황), 아내를 태우고 병원으로 갔다. 백화점에서 맛있는 빵을 샀다고 했는데, 이거라도 먹으면서. ... 그리고 밤을 꼴딱 새고 다음날 새벽, 세온이가 태어났다.

병원과 조리원에 있는 2주 정도 동안에 집에서 잔 적은 없고, 내가 계속 집과 조리원을 왔다갔다 했다. 조리원을 나오고 나나서는 바로 처가로 아내와 세온이를 데려다줬다. 그리고 한 2달 정도, 집에서 나 혼자 지냈다. 이때 참 외로웠던 것 같다. ...

아 이때 집 수리를 내가 엄청 했다. 일단 전 주인이 두고 간 에어컨 색이 촌스러워 필름지 작업을 했다. 그리고 주방 옆에 창고 유리문도 꽃 스티커가 있어서 떼었는데 알고 보니 유리가 깨진 거라서 같이 필름지 작업을 했다. 싱크대 밑에서는 왜이렇게 악취가 나나 해서 봤더니 개수대 하수관에 음식물이 쌓여 부패한거였다. 이것도 사람 안부르고 내가 직접 했다. 천정 등도 좀 바꾸기도 하고. 그리고 살면서도 소소하게 계속 손 본 곳이 많다. '내집'이니까 뭔가 마음대로 하는 그런 것도 있었다. 첫 번째 겨울에는 샷시 틈을 다 막는 그런 거를 샀었는데, 두 번째 겨울이 되니 효과가 떨어져 비닐로 다 샷시를 막아버렸다. 그리고 전세를 주기로 한 다음에는 고장났지만 그래도 쓸 수 있었던 보일러도 새로 하고, 필름이 다 뜯어진 방문과 화장실 문을 내가 직접 또 필름지 시공을 했다. ㅎㅎㅎ 여튼. 수리 이야기도 한가득인데...

2017년, 해가 바뀌고 1월 말인가, 2월 초였나(육아일기 보면 있을듯), 세온이를 데리고 우리 집으로 처음 왔다. ... 이 때의 감격은 뭔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리고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다. 그땐, 상상만 했었는데, 지금 이 집에서 퇴근하고 현관문을 열면 세온이가 아장아장 걸어온다. (왜 눈물이...ㅠㅠ) ... 뭐, 이사 가는 집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냥, 나의 첫 번째 집이고, 그냥 여기서 세온이랑 아내랑 지내면서, 뭐 그냥 이런저런 생각.

오늘 교회를 가면서, 아내랑 세온이는 처가에 데려다 줄거니까 이제 아내랑 세온이는 마지막, 한숨을 푹푹 쉬면서 내가 계속 마지막 타령을 하니까 아내는 의미부여를 자꾸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다. ... 뭐, 의미부여를 특별하게 하는 건 아닌데, 그냥... 대출을 많이 받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가 힘겹게 대출 이외의 부분은 모아서 마련한 첫 번째 집이고, 뭐 여기서 천년만년 살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떠다는게 무척이나 아쉽다. 그래서 잠도 잘 안오고, 잠도 자기 싫다 그냥...ㅋㅋㅋ

새벽 2시. 6시간 후면 이제 이사짐 센터 아저씨들이 짐을 하나하나 꺼내겠지. ... 그리고 다음주면 세입자가 들어오고. 내 집이긴 하지만 전세를 줬으니까 마음대로 들어올 수는 없는 집. ...

추억이 쌓였는데, 이제 머릿속으로만 기억해야 하니 뭔가 아쉽다. ...ㅠㅠ...

...ㅠㅠㅠ



그래도, 아내에게도 계속 요즘 말하긴 했었는데, 나를 위하여 연고도 없는 곳에 선뜻 이사 오는 것에 동의하고 같이 살아줘서 너무 고마웠다. 새로운 곳에 가면 또 어떤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알지 못하지만...ㅎㅎㅎ 거기서는 셋에서 넷이 될 수도...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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