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야기/독후감 III

나는 왜 다시 88만원 세대를 집어들었는가

inhovation 2016. 3. 4. 08:49

No. 157

88만원 세대

우석훈, 박권일 지음

레디앙 펴냄


  2007년. 22살. 이 책이 처음 세상에 선보였을 때, 난 22살이였다. 20대 초반. 사회에서 법적으로 규정한 성인으로 살아갔지만, 사회에 제대로 첫 발을 내딛진 않았던 때였다. 앞으로 맞딱뜨릴 세상이 어떤 곳인지도 잘 모른채(그 땐 나도 많이 안다고 생각했던 듯ㅋㅋㅋ), 앞으로의 인생이 생각한 대로만 술술 풀릴 것 같은 포부와 기대를 잔뜩 안고 살고 있었다. 88만원 세대를 읽었어도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았다. 사회의 힘든 현실, 특히 이시대의 20대가 살아가는 힘든 모습들을 잔뜩 그려놓고 있었지만, 당시만 해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란 신분으로 나름 '잘 나가고' 있던 때였으니까 책에서 말하는 모습들은 다른 세상 이야기만 같았다. KTX 비정규직에 관심도 없었을 뿐더러 비정규직이 무슨 이야긴지 몰랐고, 취업난이란 것이 나에게도 그대로 적용될지 난 전혀 알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2014년, 29살. 30대로 가는 관문 앞에 선, 20대를 다 보낸 나는 7년 전에 읽었던 책인 "88만원 세대"를 다시 집어들었다. 7년 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느낌은 어떨까 하는 설렘을 안고.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달라진 것은 시간과 나이 뿐만이 아니다. 그땐 이렇게 될 줄 상상도 못했지만 대학교 뿐 아니라 대학원도 졸업했다. 교사가 되고 싶었던 꿈은 임용고시 1차 탈락이란 고배를 마시고 바로 접었고 지금은 회사를 다니고 있다. 그리고 요즘에 비해 빠른 편이 있지만 결혼도 했다. 7년 전에 기대하고 상상하던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 때와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다. 그런데 같은 점은, 7년 전에 88만원 세대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대로 나 역시 지금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88만원 세대에서 말하고 있는 지금 20대의 모습과 지금의 나를 절대적으로 비교해 보면 그렇게 비참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책에서 나열하고 있는 20대의 일반적인 모습들을 나도 몇 년 전에는 경험했고, 또 지금도 어느 정도는 경험하고 있으며,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이 내가 아닌 친구, 동생들의 모습인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88만원 세대. 부제는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그리고 책 위에 조그맣게 빨간 글씨로 적혀있는 '20대여, 토플책을 덮어 바리케이드를 치고 짱돌을 들어라' 절망의 시대에 할 수 있는 최후의 몸부림이자 발악의 표현은 아닐까. 책의 결론 부분에서 바리케이트와 짱돌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의 20대는 이러한 바리케이드를 별도로 가지고 있지 않다. 이미 기존의 노동자들도 비정규직화라는 변형된 노동 방식을 제어하지 못하고 밀리고 있는데, 아직 기존 체계에 들어가지 못한 20대가 자신들을 막고 보호할 수 있는 사회적 장치를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은 너무 당연하다. 지금 우리나라의 88만원 세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들만의 바리케이드와 그들이 한 발이라도 자신의 삶을 개선시키기 위해 필요한 짱돌이지 토플이나 GRE 점수는 결코 아니다. 사회 특히 기성세대가 자신들을 지키는 바리케이드를 20대와 공유하지 않으려고 하는 현 시점, 20대도 어떤 식으로든지 더 사회적이고 정치적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가지려고 할 필요가 있고, 그들의 요구가 조금이라도 새로운 반전의 계기를 찾을 수 있도록 작은 '짱돌'을 사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pp. 286-90)


  이러면서 상징적 짱돌의 예시로 스타벅스 불매운동을 들었다. 20대 1만명 정도가 스타벅스를 가지 않고 20대 사장이 운영하는 카페를 이용한다면 사회적인 파장이 작지 않을 것이라고. 그런데 우린 이러지 못하고 있지. 물론 나 조차조 동네에 있는 작은 카페(사장이 20대건 40대건) 보다는 스타벅스에 가서 작은 커피 한 잔 시켜놓고 2층에 올라가 몇 시간씩 있다 오는 것을 좋아하니까. 저자는 책의 시작에서 이러한 20대의 모습을 10대에서 찾기 시작한다.



  첫 섹스의 경제학. 다소 도발적이고 선정적(?)이며 안읽을 수 없게 하는 88만원 세대의 1부 1장.


"청소년들이 원하는 것은 섹스 혹은 결혼생활인데,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예산'이 없기 때문에 섹스도 참고, 결혼도 뒤로 미루어야 하는 것이다." (p. 31)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야기도 16세, 춘향이와 이도령의 섹스도 16세라는 것을 들며, 대개 생물학적으로 16세에서 18세에 성적 에너지가 가장 높아 잘 디자인된 사회라면 이 나이에 정상적인 섹스가 가능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한다고 한다. 이 나이에 섹스를 한다는 것은 기쁨과 즐거움은 찰나(?)일 뿐이며 이전이나 이후에나 불안만 가득할 뿐이다. 책에서는 30세를 여성의 평균 첫 출산이라고 하지만 7년이 지난 지금은 이보다 더 늦어진 것 같다. 여튼, 생물학적 나이보다 14년 후, 남자는 군대를 7번이나 다녀올 시간 동안 지금의 20대는 대학 입시와 취업, 결혼 걱정에 둘러싸여 보내게 된다.


  책에서는 이야기를 이어나가 20대, 30-40대, 기성세대까지 아우르며 지금의 이런 비정상적인 현실이 도래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풀어놓고 있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풀어 나간 것이라 100% 맞는 말이라고 무조건적인 옹호를 할 수는 없겠지만, 상당히 일리있고 논리있는 설명이다. 또한 공무원, 국가정보원, 정부출연기관들, 상공회의소와 시만단체, 자영업, 심지어 조직폭력단과 불법 다단계판매까지 20대가 선택할 수 있는 직업들에 대해서도 적나라한 현실을 언급하고 있다.


"세대 내 경쟁이 아닌 세대 간 경쟁이 공공기관에서도 점차 강해지고 있는 추세이지만, 정부기관 내에서의 세대 간 경쟁은 사회적인 승자 독식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이 미미한 편이다. 정부기관은 그 충격의 일부를 비정규직 도입으로 해소하는데, 정부기관의 비정규직 처우는 정말 열악한 수준이다.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속에서 정규직이라는 자리는 어쩌면 지금의 20대에게 남아 있는 거의 마지막 대규모 탈출지일 것이다." (p. 114)



  책 표지에 있는 회사원, 그리고 등에 박혀있는 커다란 태엽. 지금의 20대, 앞으로의 20대를 정확히 지칭하는 모습이다. 내 모습도 비슷하다.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고. 5일동안 이렇게 보내고 주말을 보내고. 4주동안 이렇게 보내면 한달이 지나고 월급이 나온다. 그리고 다시 똑같은 한달. 이렇게 1년. ... 중간중간 보내는 휴가 때 즐거움을 만끽하면, 힘들게 일하고 이렇게 즐기고, 다시 힘들게 일하고 즐기고... 이렇게 사는 것이 당연한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기도 한다. 그런데 평생, 영원히 이렇게만 살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게다가 88만원 세대. 힘겹게 벌어서 매일을 살아가고 있는 20대에게 이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만 해버리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살기 위해서 성형수술이라도 해야 하는 20대들의 취업을 위한 경쟁은 눈물겹지만 시장과 정부라는 두 개의 주체만으로는 상황을 반전시킬 수 없다. 여기에는 제 3의 요소가 필요한데, ... 제 3의 존재가 우리나라에 있는가? 불행히도 대부분의 우리나라 원로들은 노무현식 '선택과 집중'을 지지하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서 효과적인 방안을 움직일 가능성이 별로 없다. ... 정부가 이런 일을 하지 않는 것은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다." (pp. 233-4, 248)



  책을 다 읽고 났는데도 희망의 경제학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점이 너무 안타깝고 가슴이 아팠다. 이런저런 희망의 경제학을 찾으려고 했지만 책의 결론에서도 해답은 찾지 못했다. 앞으로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말 뿐.


"큰 변화가 발생하기 전까지 지금의 10대와 20대가 처한 상황은 아마 시간이 흘러서 20년이 지나더라도 근본적인 변화는 오지 않을 것이다.(p. 137) 대기업과 정부조직에 대부분의 20대가 몰리게 되고, 이 좁은 문에 들어갈 수 없는 나머지 사람들은 막말로 "버리고 가는"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p. 139-40) 우리나라의 현 상황은 경제 공황으로 향하려는 에너지가 지나치게 충만해서 폭발 직전인데, 이러한 폭발에 의해서도 지금의 세대 간 불균형은 해소되지 않고 오히려 강화될 것이다." (p. 273)


  그래도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이런 문제를 푸는 방법을 제시했다. 과연 이루어 질지는 의문이지만. 흥미로운 것은 공저자인 박권일의 에필로그에서는 방법이 없다고 한다.


이 문제를 푸는 해법은 논리적으로 두 가지밖에 없다.

한 가지는

현재의 88만 원으로 충분히 살 수 있는 생활의 양식을 제시하거나

그런 사회를 만드는 방법이다.

...

또 다른 방법은

이들의 소득이 높아지고 직업의 안정성이 높아지는 방식으로

기존의 노동과 사회를 재구성하는 방법이다.

p. 300


이민을 떠나지 않는 이상,

개인이 이 구조적 문제를 피할 방법은

사실상 없는 상황이다.

p. 325


 어떤 것이 맞을까? 나는 앞으로 해야 할까?


2014년 6월 9일 @inho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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