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야기/독후감 III

죽음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이 있는가

inhovation 2016. 3. 3. 21:57

No. 155

죽음이란 무엇인가

셸리 케이건 지음

박세연 옮김

엘도라도 펴냄


  나는 기독교인이다. 1994년 부활절부터 다녔으니 만 20년이 갓 넘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동안 강산이 두 번 바꼈다. 3년이면 서당개도 풍월을 읊는다는데 그동안 8마리가 풍월을 읊고 지금 9마리째다. 서당개도 이런데 나도 그동안 교회를 다니며 기독교에 대해 많이 알게되고 믿게(?) 되었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고민이 점점 생겨났다. 20살이 넘어서면서 부터 교회학교를 졸업하고 소위 '교회봉사'라고 하는 교회 일도 많이 하게되고, 자연스레 교회생활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믿음도 자라는 것 같았지만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것들도 알게 되었다. 이러면서 나는 내 믿음을 한 발자국 뒤에서, 3인칭 관점으로 객관적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기 시작했다. 그동안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부터 교회를 다니면서 교회학교에서 가르쳐 주는 것들을 알게 되고, 정확히 말하면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천국과 지옥. 죽음과 부활도.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지금까지 믿었고, 아직도 믿고 있는 것을 모두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예수님을 믿으면서 개인적 또는 여러 사람과 함께 '체험'한 것도 있고, 그리스도인으로 생활하면서 돌이켜보면 감사한 점도 매우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교육의 문제 중 하나가 주입식, 암기식 교육인 것 처럼, 한국 교회 안에서도 교회 학교를 다니며 나도 기독교 교리와 성경 지식을 주입식, 암기식으로 배운 것도 많이 있다. 그러다 20대 중반에 들어서야 이런 나의 상황을 깨닫고 내가 그동안 믿었던 것들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된 것이다.


  서론이 매우 길었는데, 이런 배경에서 '죽음'에 대해 고민해 보기 위해 꺼내든 책이 셸리 케이건의 '죽음(DEATH)'이다. 한국어 책 제목은 '죽음이란 무엇인가'이다. 어떤 책 소개 블로그 이런 곳에서 처음 접해서 '읽어보면 재밌겠다' 하는 생각으로 주문했다. 책을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은 뭔가 '이래도 되나' 하는 기분이었다.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그리스도인 틀 안에 박힌 생긱인 듯 하다. 죽음이란 주제에 대해 성경을 통해 공부하지 않는 다는 것이 뭔가 찝찝한 기분도?...ㅎ 그리고 두렵고 조금은 무서운 마음도 들었다. 내가 이 책을 다 읽었을 때 믿음을 저버리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러지는 않다. 책 중반에는 약간 '믿음을 버려야 하나?' 하는 고민도 아주 약간은 든 것 같지만, 책이 두꺼워서 고민하는 시간이 많아져서 그런지 다 읽을 때 즈음은 내 고민의 결과들도 조금씩 생기면서 셸리 케이건의 논리와 그의 결론에서도 조금은 자유롭게 되었다.


  이 책은 예일대 교수인 셸리 케이건이 대학교에서 죽음에 대해 강의 한 내용이다. 총 14장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니 한 학기 분량인 듯 하다. 처음엔 한 주에 한 장씩 읽고 공부하려고 했는데 그러기엔 너무 지루하기도 해서 그냥 쭉쭉 읽어나갔다. 죽음에 대한 저자의 주장은 너무나도 명확하다. 프롤로그부터 이런 주장을 밝히고 있고 본문 내내, 그리고 에필로그에서도 같은 주장으로 고수하고 있다. 


"영혼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기계에 불과하다. 물론 일반적인 기계가 아니라 '놀라운' 기계다. 우리는 사랑하고, 꿈꾸고, 창조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기계다. 계획을 세우고 이를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그런 기계다. 우리는 '인간'이라는 기계다. 그리고 기계가 작동을 멈추는 순간 모든 게 끝난다. 죽음은 우리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거대한 신비가 아니다. 죽음은 결국 컴퓨터가 고장 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현상이다. 모든 기계는 언젠가는 망가지게 되어 있다." (에필로그 중)

이런 주장이 프롤로그부터 강하게 나와서 조금 쫄았던 것도 있다.ㅋ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자신의 생각에 동의해 주길 바라면서 '강요'까지는 하지 않고 있다. 다음과 같은 점이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즈음, 나는 여러분이 내 주장에 동의해주기를 바란다. 어쨌든 나는 내 생각이 옳다고 믿고 있으며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그것은 여러분 스스로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다. ...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나의 이러저러한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 해도 좋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 죽음이라고 하는 주제에 대한 다양한 주장들을 놓고 여러분 스스로 깊이 있게 생각할 수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만족한다." (프롤로그 중)


"이 책을 읽는 동안 지금까지 갖고 있었던 생각들에 관해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면, 나는 그것만으로 만족스럽다. 내가 제기했던 다양한 주장들에 여러분이 동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러분 자신이 희망하고 바라며 생각하는 것들이 과연 진실인지 의심해보고, 자신이 어떤 주장을 지지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고, 비판적인 시각에서 자신의 생각을 검토해보려는 노력이다." (에필로그 중)

  책을 읽는 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죽음이란 무엇인지 물어보면서 책을 보여주니 이런 반응이 있었다. '어떻게 죽어보지도 않고 죽음에 대해 논할 수 있는지...' 그러나 경험해 보지 않은 것을 논하지 말아야 한다는 법은 없으니 꼭 저자를 탓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저자도 경험해 본 것이 아니므로 저자가 내린 결론이 무조근 '옳은 것'이라고 여기며 독자도 자신의 생각을 무조건 바꿀 필요는 없을 것이다. 스스로 밝혔듯이 비판적인 시각에서 자신의 생각을 검토해 보는 것이 중요하므로...

  저자는 이 책이 철학책이며 이성적인 차원에서 논리적으로 '죽음'에 접근할 것이라고 하고 있다. 그러므로 종교적이거나 다른 차원에서의 논의는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적인 잣대를 들이대면서 책의 내용에 대해 갑론을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책의 중반정도까지 읽을 때에는 철학 논리만 맞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좀 흔들렸는데,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한가지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죽음에 대해서 셸리 케이건의 의견 한 가지만 맞는 것은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또 좋았던 점은 저자의 의도대로 내가 '죽음'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앞부분에서는 이원론과 일원론 등등에 대해 동생과 함께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이원론을 믿어야 하나, 일원론을 믿어야 하는지 함께 이야기 했던 것도 기억이 나고, 뒷부분으로 가면서는 좀 더 과감해지는 저자의 주장에 대해 나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검토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영생'에 대해서도 다루는데 이 부분에서는 내가 그동안 영생에 대한 제대로 된 생각도 갖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내가 가졌던 믿음은 정말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것들 뿐이라서 완전 초보적인 수준의 믿음이라고 해야 할까... 여튼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죽음에 대한 책이지만 마지막에는 삶으로 끝난다. 에필로그의 제목은 "다시 삶을 향하여"다. 그리고 맨 마지막 문단은...


"정말로 중요한 건 이것이다. 우리는 죽는다. 때문에 잘 살아야 한다. 죽음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다. 이제 이 책을 덮고 나거든 부디 삶과 죽음에 관한 다양한 사실들에 대해 여러분 스스로 생각해보기 바란다. 나아가 두려움과 환상에서 벗어나 죽음과 직접 대면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또 다시 사는 것이다." (에필로그 중)

"고민하는 힘" 이후로 고민 많이 하게 된 책을 읽어서 기분이 좋다. 죽음, 앞으로 더 고민하자. 그리고, 더 잘 살자.


ps. 열심히 읽고 본문에도 밑줄 많이 쳤는데, 블로그에는 프롤로그랑 에필로그만 인용해서 앞이랑 뒤만 읽은 기분이다.ㅋ

그러나... 더 재미있는 부분이 본문으로 많이 있으니 추천하는 책이다.


2014년 4월 25일 @inhobook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