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이번에도 카메라를 들고 틴즈 수련회에 참여했다. 카메라를 들었으면 여기저기 쫒아다니면서 수련회 이모저모를 가급적 빠짐없이 담아내야 한다. 수련회 때 카메라를 들고 있으면, ... 솔직히, 외롭다. 그림자가 된 느낌이다. 소리없이 따라다니는 그림자. 의식하면 보이고, 그냥 모른채 있으면 머릿속에 생각조차 하지 않는, 그런, 어두운 그림자. 나는 2박 3일 동안 수련회에 온 사람들의 그림자였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활짝 웃으며 브이를 해 주는 친구들도 있었고, 뒤늦게 '앗'하며 카메라를 발견하고 못본척 의식하는 친구도 있었다. 어떤 친구들은 카메라가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런데 카메라를 들고 그림자가 되는 것, 특히 수련회에서 그림자가 되는 것은 생각보다 스트레스가 높다. 우선, 사진 찍히기 좋아하는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뉜다. 성향을 파악하고 눈치를 챙겨야 한다. 그리고 그 중간에, 수줍어하는 아이들을 적당히 설득해서 사진으로 남겨야 한다. 10대와의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필요하다. 한참을 찍다 보면 찍히는 아이들 사진만 있다. 뷰파인더에서 소외되는 아이는 없는지 매의 눈으로 관심을 갖고 둘러봐야 한다. 예배 시간은 더 어렵다. 그 시간이 방해되지 않도록 해야한다. 너무 들이대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진짜'의 순간들을 놓치는 것도 그림자의 역할을 다 하지 못하는 것이다. 방대한 그림자의 기록을 정리하는 것도 갈등의 연속이다. 한장한장 보면서 어떤걸 지우고 어떤걸 남길지 순간순간 의사결정을 해야한다. 눈을 감고 있네, 흔들렸네, 뭘 찍은거지, 등등 되돌릴 수 없는 과거의 순간을 아쉬워하며, 기울어진 수평도 다시 잡고, 노출값도 다시 찾고, 적당히 잘라내기도 하고, 시간도 쏟아야 한다.
그러나, 그림자만의 <기적>은 방대한 기록을 정리할 때에야 마침내 시작한다. 주일 오후 내내 '나 주님을 모른다 하여도'를 틀어놓으며 사진을 편집했다. 도착해서 떠날때까지 2박 3일의 추억이 몇 번 돌고 나서야 그나마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나왔다. 찬양을 들으며, 사진을 넘겨보며, 입가에 미소짓기도 하고, 괜시리 울컥하는 기분도 들고, 눈물도 몇 방울 쪼끔 나왔다. 방구석에서 다시 시작된 그림자의 물놀이, 그림자의 찬양, 그림자의 예배, 그림자의 셀레브레이션까지, 이제야 수련회가 진짜 끝났다.
스트레스가 많긴 했어도 렌즈를 통해 담은 수련회의 모든 모습을 보니, 역시나, 사랑스러웠다. 특히, 첫날 단체사진을 찍고 내려오는 나에게 다가와 "쌤은요?"라고 물어본 아이의 짧은 한마디, 둘째날 저녁집회가 끝나고 "집사님은 눈으로도 보고 카메라로도 보고 두번 본 사람이라 더 행복한 사람이에요."라고 격려 해 주신 사모님의 말씀이 아직도 귓가에 울린다.
수련회때 들었던 마음, 나는 외로웠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나는 외로웠나. 나는 그저 그냥 그림자였나.
...
'어? 그림자는, 빛이 있는 곳에 있는데...?'
그렇다. 그곳엔 빛이 있었다. 사진 속에 있는 모든 이들이, 빛이다.
수련회가 끝나고, 틴즈 교사방에서 더욱 위로받고 은혜받은 다른 쌤의 말씀.
"그림자를 보고 아 해가 떴구나, 빛이 있구나 하고 실감하는 사람도 있어요. 인호쌤은 수련회 내내 빛의 증인이셨어요. 인호쌤의 눈을 통해 본 아이들은 참 아름답네요~ 감사해요 인호쌤❤"
나는, 그림자가 아니다. 빛의 증인이다.
'inhovation'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놀고 먹고 행복했던 2024년을 마무리하며 (0) | 2024.12.31 |
---|---|
(묵상) 악의 기준 (렘 51:20-32) (0) | 2024.08.21 |
(묵상) 나는 너의 하나님, 너는 내 백성 (렘 31:1-9) (0) | 2024.08.05 |
생각지도 못한 일에 감사한 2023년을 마무리하며 (2) | 2023.12.29 |
서울 이태원 태국대사관 앞 코코넛밥 (0) | 2023.09.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