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 나오는 맛집을 처음 찾아가봤다. 토요일 점심. 차로 1시간이나 달려 신촌 세브란스병원 옆에 있는 효동각.
이 날 백종원의 3대천왕 짜장면 편(?)에는 1. 군산 매운 짜장면, 2. 광주 한그릇에 섞어먹는 짬짜면, 3. 서울 건강 짜장면. 군산이랑 광주는 갈 수 없어서 서울 맛집으로 가기로. 인터넷이 치니까 이미 유명해서 어딘지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건강 짜장면=집에서 만든 것 같은 짜장면의 특징은 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구마, 단호박, 버섯 등등 뭐 이런 야채들을 넣어서 맛이 좀 신기하다는 것? 그리고 주문과 동시에 조리를 해서 대기시간이 길다는 것. 그리고 하루에 3시간 밖에 영업을 안 한다는 것.
12시 30분 쯤 도착. 이미 줄이 길다.
주차는 저기서 더 나가면 세브란스 병원 주차장 입구 건너편 코너에 세웠다가
가게 앞에 자리가 있어서 바로 옮겼다.
가게들 앞에 지정주차 공간이 있는데 가게마다 1-2자리씩 배정 받은 듯.
아주머니 허락을 받고 세웠다.
화학조미료, 향신료, 두반장 등등을
일체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군요.
12시 55분에 들어왔다.
들어옴과 동시에 주문.
메뉴는 없고 크기만 선택하면 된다.
보통 / 곱배기
중간에 나무로 된 판이 3대천왕 인증? 뭐 이런거다.
아무리 사진을 찍으며 놀아도 음식은 나오지 않는다.
주변을 둘러봐도 다 음식을 기다리는 사람 뿐이다.
1시 30분. 드디어 짜장면이 나왔다.
35분을 기다렸다.
위에가 보통, 아래가 곱배기.
6천원, 8천원.
양은 정말 곱배기.
일반 짜장과 다른 점은 없다.
먹어보면 버섯 씹히는 식감이 좋다.
그리고 고구마같은 이런 특이한(?=짜장에는 있지 않았던) 것들이 이색적이다.
우리 전 테이블도 커플이었는데,
곱배기 두개를 먹다 남기고 갔다.
아내가 보통을 먹었는데 힘겹게 다 먹었고
나는 곱배기를 먹었는데 정말 힘겹게 다 먹었다.
다음에 간다면 보통을 먹겠다.
맛은,
자극적이지 않고 그냥 짜장맛이다.
맛이 없거나 한 것은 아니다.
기대는 컸고, 그러나 실망은 없었다.
사실 '엄청 맛있겠다'를 목표로 찾아간 게 아니라
조미료 안 쓰는 짜장면을 찾아간 거라서
우리의 목적은 달성한 것이었다.
그냥 뭉뚱그려 표현하면
맛있었다.
(나와 아내의 입맛엔)
그럼 지금부터 느낀점.
짜장면이 나오는 시간이 무려 35분이나 되니 아내랑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우리'와 관련 된 것 부터 이 가게를 둘러보며 느끼는 것들까지. 둘이 대화를 많이 할 수 있도록 음식을 늦게 주는(?) 시스템은 좋은 것 같기도 하다. 진짜로. 급한 사람들은 얼른 나오는 곳에서 먹으면 되고, 뭐.
우선, 3시간 밖에 가게를 하지 않는다는 신념(?)이 존경스러웠다. 방송에는 아내분과 둘이 한다고 나온 것 같았는데, 실제로는 카운터에서 아들로 추정되는 분도 같이 일 하고 있었다. 사장님 = 주방에서 조리 전담, 사모님 = 설겆이 및 서빙, 아드님 = 카운터 및 서빙. 정말 바쁘게 돌아가고 사람이 한 명 더 있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또 돌아가는 모양을 보면 1명이 더 있으면 일이 남게될 것 같았다. 정말 꼭 3명이 바쁘게 일하면 잘 돌아가는 시스템 같았다. 엄청 바쁘게 일할 수 있는 것을 견디는 힘은 아마 1일 3시간 근무에 있지 않을까...ㅎㅎ 물론 영업 후 다음 날 재료를 준비한다고 하긴 했지만. 어떤 가게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가게를 열어도 이곳에서 3시간 손님이 안 오는 곳도 많을텐데, 참.
물론, 이렇게 할 수 있는 게 당연히 경제적인 부분으로 손해가 없으니까 가능한 것이겠지. 대강 계산해 보니, 우리가 음식을 먹은 시간은 15분이니깐 총 50분 동안 테이블을 잡고 있었던 것이다. 3시가 되는 시점에 손님을 어떻게 받을지는 모르겠으나 테이블 회전은 3-4회 정도. 테이블 개수 세어보고 대략 평균 매출 계산하고 하니까 한달 수입이 꽤 나왔다. 음식 원가는 엄청나게 들어가진 않을 것 같고, 왠지 가게도 사장님 소유일 것 같아서 월세도 안나갈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런 인기라면 더 일을 해도 손님은 끊이지 않을텐데, 그리고 돈도 더 많이 벌 수 있을텐데 그걸 안하고 계신 것이다. 대단.
여기에 일요일, 월요일, 공휴일은 다 쉰다. 헐. 그래서 위에 월수입 추정도 22일로 했다. 어쩌면 사장님의 가게 운영 철학은 경제적인 이윤에 있는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물론 이 모든 논의는 현재 이분의 경제적인 (추정) 수입이 꽤 괜찮기 때문일 것이라는 가정하에 있다) 짜장면 단일메뉴만 하시는 것을 보아, 게다가 건강한 짜장면을 고수하시는 것을 보아, 짜장면에 대한 애정과 나름대로의 철학(물어보진 못했지만)이 있을 것 같고, 즉 일(짜장면 만드는 것)을 사랑하시는 분 아닐까. ... (일을 사랑하는게 직장인에게 쉬운 일은 아닌데... 아 직장인은 하루에 8시간+a로 힘들게 일하지... 그리고 모두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아닐 테니.) 여튼.
이런 걸 자영업을 해야 하나. 근데, 열에 아홉, 아니 백에 구십구가 일단 망한다는 자영업.ㅠㅋ 일을 사랑하며 경제적인 만족을 누리는 것. 가능하겠지. 직장인에게도...?
ㅎㅎ... 짜장면이 하도 안나와서 별별생각을 다 해봤다. 근데 좋았다.ㅋ 어쩌면 우리는 너무 빠른 것에만 익숙해져 있는지도...
다음에는 와보지 못한 사람들과 함께 다시 오고 싶다. 지금까지 두서 없는 짜장면 먹고 느낀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