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새로운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돈이 아까운 생각이 아내와 나의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던 것 같다. 말없이 걷다가도 지난 일에 대한 약간의 후회와 아쉬움을 간간히 얘기했다. 그러다가 우연찮게 생긴 1센트로 시작한 카지노에서의 게임이 2000배가 넘는 대박을 터뜨리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어깨춤이 절로 나왔다. 얼굴은 빨갛게 상기되고 엄청 흥분이 되었다. 큰돈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우리에겐 그래도 매우 중요한 돈이었다. 김동률의 출발에서 이런 가사가 나오지. ‘별 것 아닌 일에도 호들갑을 떨면서’ ㅎㅎㅎ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정말 딱 맞아 떨어지는 말이다. 생각지도 못한 30만원의 지출에 기분이 푹 다운됐다가도 2만원도 안 되는 돈이 생겼다고 또 이렇게 즐거울 줄이야... 여행을 길게 하다 보니까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고 느끼는 바도 많은 것 같다. 마치 작은 인생을 사는 것처럼 기쁜 일, 슬픈 일, 즐거운 일, 속상한 일 등등 인생을 살면서 느끼는 감정을 다 겪는 것 같다.
반대로 생각해 본다면 또 우리의 인생이 하나의 여행이 아니겠는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여행을 하고 있는 게 우리의 삶이겠지. 남들이 갔던 여행지를 그대로 답습하기 보다는 모르는 곳에도 가보며 그 과정에서 재미를 느끼는 여행이 되어야 하듯이, 우리의 삶도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개척해나가야 하겠다. 나의 삶도. 계획대로 되지 않는 여행일지라도 그 안에서 소소한 행복이 있는 것처럼, 생각대로 되지 않는 인생에도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며 작은 즐거움을 찾아야 하겠다.
호텔 조식을 먹었다. 도미토리에서는 토스트만 먹었는데 여기서는 주문을 하면 가져다주는 약간 고급이었다. 그래봤자 빵이랑 계란, 소시지 같은 것들이지만 그래도 급이 다르긴 했다. 아침을 먹고 방에 들어가서 체크아웃 직전까지 계속 쉬었다. 짐도 다시 정리하고 여유를 부렸다.
12시쯤 체크아웃 하고 옆에 있는 새로운 숙소로 옮겼다. 체크인이 2시라고 해서 2시간 동안 로비에서 블로그를 쓰면서 쉬었다. 우리 방은 도미토리식이었는데 엊그제 묵었던 숙소보다는 조금 좋지 않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짐을 정리해놓고 밖으로 점심을 먹으러 밖으로 나갔다. 차이나타운의 새로운 길로 가보면서 거리를 구경했다. 그러다가 뭔가 맛있을 것 같은 인도네시아 빠당 집을 찾았는데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 주문한 것이 빠당인지는 모르겠고 그냥 시켜서 먹었다. 뭐, 맛있었다. 그리고 가면서 당근 케이크를 사먹었다. 짭짤한 게 맛있었다. 지나가면서 어제 밤에 봤던 푸드코트 모여있는 곳을 지나가면서 망고빙수도 사먹었다. 어제 돈 뽑으니 이렇게 여유롭구나...
마리나베이에 도착해서는 마리나베이에 대해 전시해 놓은 박물관에 갔는데 특별히 재미있있거나 하진 않았다. 그 앞에서 탄 시소가 더 재미있었다. 더 샵스를 조금 더 구경하다가 가든스 바이 더 베이에 가기로 했다. 높은 에스컬레이터를 올라 더 샵스 옥상 뒤편으로 마리나베이샌즈랑 연결된 다리를 지나 호텔로 들어갔다. 화려한 외부 못지않게 내부도 어마어마했다. 놀라웠던 것은 호텔 반대편은 모두 발코니라는 것이었다. 역시, 앞모습 뿐 아니라 뒷모습도 싱가포르 최고의 호텔다웠다. 가든스 바이더 베이는 아주 큰 식물원이었다. 큰 조형물 나무를 구경하다가 힘들어서 정자에서 10분 정도 누워서 잤다. 그리고 다시 마리나베이샌즈호텔로 이동. 호텔에서 올라가보지는 못하고 그냥 1층만 구경하다가 카지노로 갔다.
카지노에서는 음료수 엄청 많이 마시고 구경을 했다. 그러다가 어제 주운 바우처로 게임을 하는데 무료게임이 돼서 20판이 자동으로 시작됐다. 여기서 조금 따게 되었는데 다시 10판을 자동으로 시작했는데 대박이 났다. 그래서 게임을 그만 두고 꺼냈는데 20달러가 넘게 찍혀 있었다. 헐.ㅎㅎ 기분이 짱 좋아져서 오늘은 이거로 저녁에 칠리크랩을 먹기로 했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가고 있어서 우리는 다시 가든스 바이 더 베이를 찾았다. 다리는 내려가지 않고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계속 구경만 하는데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삼각대까지 세우는게 뭔가 심상치 않아보였다. 조명쇼를 하나 생각하는 그 순간 불이 꺼지면서 쇼가 시작됐다. 와우. 대박이었다.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아서 그냥 구경만 하고 있었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구경을 하게 된 것이다. 불이 반짝반짝 하면서 하는 그런 쇼였는데 나쁘지 않았다. 의미가 있었던 것은, 나중에 알고 보니 낮 동안에 모아놓았던 태양열전기로 하는 쇼라고 했다. 역시 싱가포르였다.
쇼가 끝나고 나서는 배고파서 바로 밥을 먹으러 갔다. 텔룩에이어 근처에 있는 푸드코트에서 칠리크랩을 시켰다. 가격은 seasonal price라고 적혀있었는데 한 마리에 40달러라고 했다. 그동안 먹었던 것에 비하면 엄청 비싼 가격이지만 그래도 시켜먹었다. 그리고 옆 가게에서 김치찌개도 시켰다. 처음 먹어보는 칠리크랩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소스는 칠리소스 맛이지만 뭔가 특별했고, 가장 좋았던 점은 게가 진짜 완전 크다는 것이었다. 다리에도 살이 가득 차이 있어서 부드러운 그 맛이 일품이었다. 김치찌개도 새콤한 게 정말 맛있었다. 밥까지 싹싹 비벼서 거하게 저녁을 잘 먹었다. 커피랑 후식 디저트까지, 오늘은 싱가포르에서 정말 제대로 먹었다. 싱가포르에서는 돈을 써야 즐길 수 있는 곳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