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비엥은 루앙프라방과는 다르게 즐겨야 하는 것 같다. 루앙프라방은 할 게 없어도 도시 자체가 즐겁고 마냥 좋았는데, 방비엥은 그게 아니었다. 방비엥에서는 도시 자체보다는 자연을 즐겨야 하는 것이었다. 어제도 블루라군에 한국 사람들이 많았다고 해도 가는 길이 즐거웠고 블루라군도 뭐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 2시간 넘게 카약을 타면서 느낀 건, 이건 정말 신세계라는 것이다.
하롱베이에서 30분 간 카약을 타봐서 뭐 별게 있을까 했지만, 흐르는 강에서 산을 끼고 타는 카약은 정말 나에게 별천지를 선사해주었다. 우선 스릴 있게, 때로는 쉬엄쉬엄 노를 저으면서 카약을 타는 게 정말, 진짜 많이 재미있었고, 여기에 방비엥의 자연 풍경이 완전 압권이었다. 하- 이건 정말 글로도 잘 표현이 안 되고 사진으로도 부족한 것 같다. 오늘 아침 급히 결정해서 떠난 카약 투어였는데, 뭐 안했다면 이런 기분도 몰랐으니까 그냥 끝이었겠지만, 이 기분을 알고 나니 정말 하길 잘 했다.
루앙프라방과는 즐기는 법이 달랐는데, 이걸 이제 안 것 같다. 나중에 시간이 된다면 카약만 며칠 더 타고 싶기도 하다. 이렇게 방비엥을 떠나게 되니 뭔가 아쉽네. 처음에 싫어했던 마음이 괜스레 미안하기도 하고...?
숙소를 옮겼는데도 또 닭이 꼭두새벽부터 울어 재낀다. 정말, 정말 괴롭다. 이 동네는 어딜 가야 닭이 없을까. 닭소리를 들으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 알람이 울려서 깼다. 오늘은 비엔티엔으로 갈지 말지 결정을 해야 한다. 아내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고민이 되었다. 그냥 갈까도 했는데, 그래도 15,000원도 안하는 가격에 하루 종일 튜브도 타고, 카약도 타는 게 한국에서는 즐길 수 없는 일인데 안하면 조금 아쉬울 것도 같았다. 그래서 그냥 아내와 얼른 알아보기로 했다.
밖에 나와서 카약킹 투어 신청 하는 곳으로 가니 9시에 출발이고 5시에 끝난다고 했다. 어제 알아본 곳은 4시에 끝나는 것이었는데... 가격도 어제는 9만킵이었는데 이곳은 10만킵이다. 그래서 할인을 해달라고 하니 안 된다고 한다. 그래서 그냥 다른 곳을 가거나 그곳도 안 되면 비엔티엔 가면 되니까 나가니까 9만킵으로 할인 해 준다고 한다. 오예.
한 시간 정도 남아서 얼른 짐을 챙겼다. 호텔은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밤에 비엔티엔 넘어가기로 하고 우선 체크아웃 하기로 했다. 가방을 다 싸서 호텔 로비에 맡기고 남은 돈으로 샌드위치를 한 개 사먹었다. 남은 라오스 돈이 얼마 없어서 10,000킵짜리로 먹었다. 아직 환전할 돈은 많이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너무 많이 돈이 남을 것 같아서 그냥 현재 있는 돈에서 아껴서 쓰고 라오스를 나가기로 했다.
투어 하는 곳으로 가니 한국인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한국 분들이 많다고는 했지만 정말 많다. 툭툭 한 차에 모두 한국 사람들만 탔다. 가는 길의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지만 금방 말도 섞으면서 조금씩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누면서 이동했다. 먼저 도착한 곳에 내려 구명조끼를 입고 튜브 타는 곳으로 갔다. water cave라고 동굴 안에 물이 차 있어서 줄을 잡고 튜빙하는 곳이었다. 물이 꽤 찼지만 동굴 안에서 튜브를 타고 돌아다닐 때는 물이 차가운 것도 모르고 이동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동굴 안에서 소리도 지르며 튜브를 부딪치며 이동을 하니 정신이 없기도 했다. 동굴 구경도 좀 했지만 사실 정신없이 구경하는 분위기. 그래도 재미있었다. 이런 곳도 있구나, 재미있구나, 이정도. 나쁘지 않았다.
튜브를 타고 나와서 점심을 기다리는데 어떤 태국인 남자가 내 샌들에 관심을 보이면서 막 사진을 찍고 그랬다. 이쁘다고 하면서 어디서 샀냐고 완전 좋다고 자기도 사고 싶다고 막 이랬다. 그래서 루앙프라방에서 샀다고 하니까 자기도 내일 루앙프라방 가는데 어디서 파냐고 얼마냐고 막 물어본다. 그래서 2개에 25만킵이라고 하니까 알겠다면서 또 사진찍고 그런다. 그런데 더 재밌었던 것은 같이 튜브를 탄 다른 한국 분들도 우리 샌들이 너무 좋아보여서 인터넷을 찾아보려고 했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분들도 내일 루앙프라방 가신다네. 그래서 자세히 알려드리니 완전 좋아하신다. 이러면서 우리는 이 샌들의 장점을 설명해드리고 그랬다. ㅎㅎ 조금 비싸도 신중하게 산 것이긴 한데, 이게 그렇게 좋은 건가?
점심은 볶음밥과 꼬치 두 개, 바게트빵 한 개였다. 풍성했다.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을 정도. 점심을 먹으면서는 아까 샌들토크를 했던 우리 투어 분들과 같이 앉게 되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중학생 딸과 함께 온 엄청 젊어 보이시는 어머님, 대학생과 고등학생 자매, 각각 와서 커플이 된 고 1, 2가 되는 여학생과 남학생. 장기간 에어텔 투어를 하며 친해졌다고 한다. 내일 루앙프라방에 가시니 우리는 6일동안 좋았던 점들과 즐길 것들을 정리해서 쭉- 알려드렸다.
점심을 먹고 잠시 햇볕을 쬐며 체온 좀 올리고 카약을 타러 갔다. 가는 길에 코끼리 동굴이라는 곳에 잠시 들렸는데, 작은 큰 굴 안에 코끼리 모양을 한 바위와 그 안에 불상이 있는 게 전부였다. 가는 길에는 자유롭게 노니는 소와 송아지를 봤는데, 이곳 라오스에서만 볼 수 있는 광경 같았다. 소들조차도 여유로운 이곳. 방비엥에서는 이렇게 자연으로 나오면 좋다.
툭툭을 타고 잠시 이동해서 카약 탈 준비를 했다. 대부분 같이 온 사람끼리 타게 되었고, 나는 엄청 무서워하는 아내를 안심시키며 카약에 올라탔다. 타기 전에 교육도 좀 하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노하우도 들었던 것이 큰 도움이 됐다. 2시간 반 동안 카약을 타고 내려간다는데, 정말 기대가 되었다. 하롱베이에서 30분은 정말 너무 짧았다.
카약에 올라타니 흐르는 물살이라 재미있어 보였다. 그리고 바로 만나는 격류. 무사히 통과하고 자연을 벗 삼아 노를 젓는데 정말 함박웃음이 활짝 나오며 기분이 좋았다. 루앙프라방에서 느꼈던 그 째지는 기분 비슷하게... 아, 방비엥에서는 이런 걸 해야 하는구나...
중간에 잠시 쉬었다가 다시 가고, 또 쉬는 곳으로 갔는데 여긴 Fat Monkey라고 하는 자연 주점이었다. 50명 정도는 되어 보이는 서양인들이 큰 소리의 음악에 리듬을 타며 춤을 추고 서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다들 손에는 비어라오를 한 병씩 들고. 외나무다리에서 권투경기도 벌어지고 있었고, 탁구를 하는 사람들, 그냥 앉아서 떠드는 사람들까지 정말 다양했다. 이런 모습을 본 우리 동양, 한국 사람들은 다들 뭔가 충격을 먹은 분위기였다. 얌전할 것 같은 여자분들은 서양 사람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어울렸고, 남자분들은 그냥 앉아서 저들을 구경했다. 우리 부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냥 멀뚱히 서 있기만... 그런데 옆에서 어떤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오늘 밤에 뭐 하냐고. 헐. ㅋㅋㅋ 뭔가 무서워 보여서 비엔티엔 갈 거라고 했다. 그러니까 자기네들은 캥거루 sunset에 갈 거라고 해서 그게 뭐냐고 하니 뭐라뭐라 하는데 잘 들리진 않았다. 이건 내 리스닝 실력이 딸려서 그런 게 아니라 큰 음악 소리 때문일 거다. 영국에서 왔다는 이 친구는 아스날을 좋아한다고 했고, 옆에서 몇마디 더 하더니 다시 리듬을 타며 다른 곳으로 갔다.
여길 보면서 정말 신기했다. 이 사람들은 여기서 이렇게 노는구나... 하루 종일 이렇게 놀면서 무슨 얘기를 할지도 궁금했고, 우리나라에는 뭔가 없는 문화, 아니면 내가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노는 문화에 좀 충격도 받았다. 우리나라의 클럽 같은 곳이겠지만, 뭔가 그냥 여긴 파티 분위기였다. 파티 문화는 확실히 우리나라에는 좀 없는 편이지.
50여명의 사람들 중 한 30여명이 빠져나가고 새로운 사람들이 왔다. 담배냄새가 많이 나서 아내는 카약에 내려가 있는다고 하고, 나는 권투경기를 구경하다가 여자분들이 한 번 해보라는 꼬임에 넘어가(?) 파란 글러브를 끼게 되었다. 나의 상대 빨간 글러브는 덩치가 큰 백인 남자. 나는 가뜩이나 운동한 몸도 아닌데 그에 비해서 엄청 왜소해 보였다. 그래도 어쩌나, 이미 글러브는 꼈고, 나는 외나무다리에서 엉큼엉큼 빨간 글러브를 향해 가고 있었다. 안경까지 벗을까 했지만, 그러면 보이질 않아서 "NO FACE"라고 말하고 경기를 시작했다. 글러브로 주먹을 맞닿고 서로 몇 번의 스윙이 오고가다 내가 한 대 때렸는데 상대가 휙 하고 물속으로 떨어졌다. 헐! ㅎㅎㅎ 믿기지 않았다. 내가 이겼다니. 외나무다리 아래는 흙탕물이 가득했는데, 상대가 거기서 올라오고 있었다. 밖은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기분이 진짜 이상하다. 좋은 기분으로. ㅋㅋㅋ 밖에 있는 사람들과 주먹을 툭툭 치면서 세레머니를 하고 있었는데, 내가 중심을 못 잡아서 나도 떨어졌다. 그러자 빨간 글러브가 인사를 하면서 포옹을 한다. 나도 꼭 껴안으면서 서로 인사를 했다. 외나무다리 위에서는 두 번째 경기가 벌어졌다. 같은 상대. 이번에도 비슷하게 휙휙 했는데 내가 또 이겼다. 헐. ㅋㅋㅋ 아내는 어느 샌가 올라와서 멀리서 날 보고 있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표정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정말 못 말려, 할 줄 알았어.’
권투를 마치고는 갈 시간이 되어 다시 카약에 올라탔다. 한 시간 정도를 더 가야 했다. 중간에는 우리 카약과 남자 둘이 탄 카약, 자매 둘이 탄 카약이 다리 밑에서 부딪혀서 자매 둘 탄 카약이 뒤집혔다. 그리고 우리가 다 같이 구조를 해 주었다. 아찔한 순간 같았지만 그래도 뭔가 재미있었고, 구명조끼랑 다 입고 있어서 안전하긴 했다.
끝나는 곳 까지 오니 파란 하늘 위에는 열기구가 떠 있었다. 멋있었다. 파란 하늘에 열기구, 그리고 우리는 산을 옆에 끼고 강물 위에서 카약킹. 선착장으로 무사히 도착하고 내렸다. 오면서 찍은 사진을 교환하고 내 권투사진은 나중에 카톡으로 받기로 했다.
케이마트 쪽으로 들어와 에어텔 분들이 머무르는 숙소를 한 번 알아봤는데 20달러였다. 나쁘진 않았고 그리 비싼 것도 아니었지만,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돈으로 하기에는 조금 비싼 편이라 그냥 나왔다. 삼거리 중간에 있는 개가 많은 호스텔은 불과 5만킵이라서 한 번 둘러보니 정말 작은 방이었는데, 내일 아침에 가고 잠만 자기엔 부족하지 않을 것 같아서 이곳으로 하기로 했다. 예약을 하고 숙소에 가서 짐과 빨래를 챙겨왔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키를 받고 방을 배정받았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좀 높은 곳에 창문은 있었지만 창틀이 없었다. 헐. 그리고 방구석 쪽은 수도관이 지나가면서 물이 뚝뚝 떨어져 있었고 상당히 지저분했다. 그리고 아까는 보이지 않던 모기도... 뭐, 6달러짜리에 무엇을 기대해야 할까, 그냥 자기로 했다.
내일 비엔티엔에 가기로 하고 숙소 비용과 저녁과 아침, 점심 값을 계산해서 30달러만 더 환전하기로 했다. 루앙프라방은 1달러에 8,090킵이었는데, 이곳은 7,900킵이다. 1달러에 약 200킵 손해, 100달러에 2,500원 정도 손해인데, 쌀국수 한 그릇이 넘는 가격이다. 그래도 뭐 어쩔 수 없지, 우리는 필요한 만큼 적당히 딱 하는 거니까.
내일 차비와 방값을 제하니, 세 끼를 38,000킵 정도 선에서 먹어야 했는데,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가, 그냥 내일 아침은 샌드위치를 사고 오늘 저녁에 많이 먹기로 했다. 그래서 그냥 어제 갔던 야채쌈집을 가서 어제 먹지 못한 오리를 시켰다. 닭도. 어제 야채 많이 먹는 걸 알았는지 정말 많이 주었다. 아내는 다 먹기도 전에 배부르다고 해서 내가 남은 것을 많이 먹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는 팬케이크. 아내는 로티를 먹어야 한다고 했는데 이게 로티인 것을 이제야 알았다. 라오스 말로 로티라고 하는 듯 했다. 초코시럽, 코코넛가루, 연유를 아주 듬뿍 뿌려주는데, 정말 이건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숙소로 돌아와서는 짐을 다시 쌌다. 내일 아침 비엔티엔으로 가는 차가 9시라서 많이 여유 부릴 시간은 없어서 다 싸놓기로 했다. 그리고 바닥에 내려놓을 수는 없어서 침대위에 올려놓고 잤다. 모기를 막기 위해 모기퇴치 팔찌도 끼고 잤다. 지금까지 여행 중에 가장 액티브하게 놀았던 날이라 그런지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잠이 술술 잘 왔다. 창문 없는 밖에서 들리는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